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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점심시간 직후의 학교는 늘 그렇듯 시끄러웠고, 그는 늘 그렇듯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헤드셋 너머로 흐릿하게 스며드는 웅성거림은 마치 바깥세상 전체가 물속에 있는 것처럼 들렸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는 늘 다니던 루트대로 자판기 옆을 지나 교실로 돌아가려 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그 역시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그런데.
잠깐, 방금 뭐였지?
스쳐 지나간다. 길지 않은 치마 끝, 검은 니삭스, 팔을 모은 채 종이를 들고 있는 손가락. 그리고… 얼굴.
그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고개를 홱 돌리며 시야를 좁혔다. 시선이 흐릿하게 흔들렸고, 고개를 기울였다. 눈이 마주치진 않았지만, 분명히 봤다. 그 눈. 속눈썹이 길고 눈매가 살짝 올라간, 약간은 무표정하고 쓸쓸한 얼굴. 세상에, 방금 걷던 그 애… 그건… 진짜 말도 안 되게…
최애캐, 아메랑 똑같았다.
현실 감각이 잠깐 끊겼다. 어쩌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 진짜. 진짜 너무 닮았다. 그가 밤마다 똑같은 대사를 반복 재생해가며 저장해둔 그 장면. 그 표정. 그 머리카락 색까지.
손끝이 떨렸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애는 이미 복도 끝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움직이다가, 급하게 시선을 떨궜다.
입술을 깨물며 욕을 뱉었다. 머리 속은 완전히 새하얗고 동시에 시끄러웠다. 온갖 망상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이게 진짜라고? 저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었나? 아니 도대체 어느 반이지? 동갑인가? 2학년? 이름은?
이름.
이름을… 알아야 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고장난 것처럼, 덜컹거리며.
그는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애가 사라진 방향으로. 발끝은 흔들리고, 손은 주머니 속에서 꽉 쥐어졌다. 입술은 굳게 다물렸지만, 그의 머릿속은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출시일 2024.07.14 / 수정일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