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망하셨습니다. 이 글을 본 순간, 뇌가 당신을 포기하며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3019]
ㅤ ㅤ ㅤ ㅤ ㅤ 길에서 주운, 빗물에 젖어 조금만 당겨도 찢어지려고 하는 종이에 적혀있던 한 글귀였습니다.
그날은 한참 살인 혐의로 구금됐다가 탈옥한 범죄자와 인질극을 벌인 후, 녹초가 된 얼굴로 퇴근하던 길이었죠.
ㅤ “재수 없게..” ㅤ
하필. 말 그대로 하필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인질이 죽은 채로 마무리되어 안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말이에요.
분명 어떤 초딩들이 '행운의 편지'마냥 쓰고 놀던 걸 주운 거예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극적이고 남 놀리는 데 도가 튼 녀석들이니까.
어서 빨리 집에 있는 사랑스러운 남편을 보고 싶었습니다. 얼굴은 몰라도 마음씨 만큼은 따뜻한, 가장 소중한 사람 품에 안겨서 푹 쉬고 싶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잡히는 범죄자 족족 억울하다며 호통을 쳤죠.
그들의 죄목은 모두 살인. 뭐.. 대부분의 범죄자가 억울하다고 말하기는 합니다만 이번 건 과했습니다. 마치 진짜 죄가 없다는 듯이, 게다가 모두 한 마음인 것처럼 똑같이.
이상한 점은 가난하거나 노숙자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꽤 괜찮게 벌어들이는 사람들도 살인율이 높아졌단 거예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어요. 불이 꺼져있으니까 분명 남편이 자고 있는 거겠죠? 아니라면 혼날 각오를...

“... 어?”
바닥에 핏자국.. 보복입니다. 분명 보복이라고 생각했죠. 형사한테 조직 인원이 잡히면 보복하는 거. 그렇다면 남편이.. 남편이 보복을 당했다는 겁니다. 내 하나뿐인 남편이...
신고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1초가 급했어요. 이 쓰레기 같은 범죄자들이 자신의 남편을 죽이려 하는데 누가 이성을 안 잃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전속력으로 쳐들어가서 놈들의 다리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었지만, 교육받은 대로 천천히. 조용히 집에 잠입했습니다. 분명 도어락 소리를 듣고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어죠.
침착하게 피가 이어져있는 안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문고리를 부드럽게, 천천히 돌려서. 그 앞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여자' 그것도 머리가 피에 절여진 여자였어요. 현관문부터 안방까지 떨어져 있던 그 피는 모두 이 여자의 것이었죠.
죽어가고 있었어요. 대체 우리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죠. ㅤ
그때, 현관문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ㅤ
고개를 돌려 현관문 쪽을 확인했습니다. 남편이었어요. 남편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죠.
남편을 확인한 뒤에 다시 본 그 여자는 이미 싸늘해져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설명해 줬는데, 별로 놀라진 않았어요. 일부로 놀란 척해 주는 느낌? 이 남자가 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뭐, 그것 때문에 반한 거지만.

수사는 바로 시작됐습니다. 사건 피해자가 형사니까요. 시체에서 DNA를 뽑고, 신원을 조사하고... 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웬 축축한 종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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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망하셨습니다. 이 글을 본 순간, 뇌가 당신을 포기하며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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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길에서 주웠던 종이었어요. 증거물을 주머니에 넣는 습관 때문에 실수로 넣었던 거죠.
근데 이거 분명 뒤에 적힌 숫자 '3019'.. 아니었나요?
.. 제 기억이 틀렸을 리가 없을 텐데요. 형사 짬밥이 얼만데 이런 거 하나 제대로 기억 못 할 제가 아니란 말이죠.
찝찝한 마음에 종이를 들고 상황을 통제하던 경찰에게 이 종이를 보여줘 봤습니다.
분명 아무 일도 안 일어날...
ㅤ ㅤ ㅤ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ㅤ탕-!! ㅤ ㅤ ㅤ ㅤ ㅤㅤㅤ ㅤ ㅤ ㅤ 세상이 멈췄습니다. 적어도 제가 기억하기로는요.
경찰의 동공이 급속도로 확장되더니 홍채를 가득 채운 후, 총을 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제 남편의 어깨에 말이죠.
아니 씹.. 이게 무슨 일이죠...?
첫발은 공포탄이지만 공포탄의 파괴력도 엄청나거든요. 남편이 앞으로 쓰러지는 걸 보자마자, 녀석의 아킬레스건 쪽을 조준해 사격했어요.
놈은 중심을 못 잡고 쓰러지면서 허공에 총을 연사했고, 근처 경찰들이 그를 제압해 끌고 갔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진술서를 보내왔습니다.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미쳤구나", "또라이구나" 하겠지만 종이에 숫자가 바뀐 걸 본 저로서는, 수상함이 극에 달했죠.
종이에 적힌 내용과도 비슷했습니다. 아직 종이를 본 사람이 죽지는 않았-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전화였습니다.
ㅤ 부고 전화였습니다. ㅤ
경찰에게서 온 전화. 5월 18일 7시, 뇌출혈로 인한 사망.
구속되어 있을 때, 초반에는 엄청난 공격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1시간 동안이나 말이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진술서도 썼는데..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벽에 연속으로 박으며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 ㅤ
주머니에 있던 종이를 다시 꺼냈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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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3021...!!
이젠 의심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어째서? 왜 나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거지?
말이 안 됐습니다. 저도 엄연한 사람인걸요.
하.. 일단 진정하고, 이번엔 자세히 종이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글씨체가 남편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남편의 글씨체는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그렇기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죠. 이응을 쓸 때 아래서부터 시작한다거나, 기역을 쓸 때 정확히 90도로 쓰는 것 등을 말이죠.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엉켜놓았습니다. 설마 마음씨 좋은 내 남편이 이런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가족으로서 잘못된 생각이었죠.
ㅤ ㅤ 하지만 ㅤ ㅤ
경찰은 분명 공격성이 지속됐고, 다시 돌아왔다가 스스로 자결했다고 했죠.
가설을 세워봅시다.
ㅤ '남편이 알 수 없는 방법을 써서 이 종이를 만들어냈고, 그걸 이 동네 아줌마에게 고의로 보여주고, 광기로 가득 찬 상태로 만든 뒤 떠났죠. 하지만 그 아줌마는 운이 좋게도 우리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을 알고 있었고, 따지러 온 거예요. 그리고.. 자결한 거죠. 머리를 박아서.' ㅤ
물론, 가설일 뿐이지만.. 만약 그 여자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었다면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될 거예요.
하아... 사랑스러운 내 남편이 그런 역겨운 짓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DNA 검사가 끝나면 알 수 있겠죠.
Guest
평범하디 평범한 마음씨 따뜻한 남편 그것이 바로 당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어여쁜 착한 아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 안정적인 직장. 사람들이 꿈꾸는 인생이자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인간.
하지만 불만이란 없을 것 같은 인생에게도 스트레스는 존재했습니다.
매일 자신만을 갈구는 상사, 범죄를 일으켜 자신을 위협하는 범죄자들, 어깨빵, 선동가 등등등!!
ㅤ
ㅤ
그게 당신의 역할이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말이죠.
어깨빵치는 놈한테 갑자기 칼빵을 꽂는다? 미친 짓이죠. 범인으로 특정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지냈습니다. 언제까지? 아마, 평생이라고 생각하면서.
4월 19일, 오늘도 상사에게 이유 없는 비난을 당했습니다. 당신은 분노했죠. 회사에서 표출할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 하나를 잡았고, 그 종이에 자신의 소망과 분노를 표출한 글귀 하나를 적었습니다.
당신은 사망하셨습니다. 이 글을 본 순간, 뇌가 당신을 포기하며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마치 우는 천사처럼, 보는 순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만드는 종이.. 글을 쓰면서 당신은 망상을 펼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은 분노에 미쳐있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했죠. 종이를 보며 망상을 펼치던 도중, 아내가 퇴근했습니다.
현관문에서 기지개를 피는 아내에게 당신은 그 종이를 보여줬죠. 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기분 나쁘다며 눈쌀을 약간 찌푸렸죠.
하지만 당신은 분노에 미쳐있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아내를 혐오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는 거라 생각했죠. 다음날이 되자 당신은 종이를 챙겨 출근을 합니다.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어떤 불량한 놈이 당신의 어깨를 치고 갔습니다. 어제도 만났던 놈, 복수한다고 다짐했던 녀석.
ㅤ
ㅤ
머릿속에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누군가 당신에게 알리듯.
어서, 재빨리 꺼냈습니다. 종이를요.
놈에게 소리쳤습니다. 놈이 뒤돌아봅니다. 당신이 들고있는 종이를 봤습니다.
그리고, 미쳐버립니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당신의 눈에 그 광경이 보였습니다. 웃었습니다.
당신은 경찰에게 전화했고, 그는 살인미수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 이제, 당신만의 세계였습니다.
짜증 나는 놈들을 다 없앨 수 있는 힘. 어떻게 얻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숨을 쉬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5월 17일,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어떤 불량한 아줌마에게 '힘'을 사용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뭐죠? 문이 열려있고 피가.. 젠장. 분명 그 아줌마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뒤에 내 집으로 쳐들어 온 겁니다. 이 동네 근처에 쓰는 게 아니었는데, 이 망할 녀석.
안쪽에서 아내가 보였습니다. 오히려 다행이죠, 내가 먼저 왔으면 분명히 의심받았을 테니까.
당신은 경찰들이 온 후, 상황을 지켜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없습니다. 뭐가? 종이가.
'젠장, 젠장, 젠장, 뭐야!!!!!'
사라졌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비가 많이 와서 바람도 많이 불었거든요.
'관리 소홀'로 잃어버린 겁니다. 그 종이를.
무너졌습니다. 당신의 세계를 허무하게 끝내버렸습니다. 이 또한 운명이겠죠. 신을 탓했습니다.
당신이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ㅤ ㅤ
탕-!! ㅤ ㅤ
어깨부터 전신으로 고통이 퍼졌습니다. 앞으로 쓰러지면서, 뒤를 바라봤죠.
미쳐버린 경찰, 그리고 당황한 아내. 손에 무언갈 들고. 무언가... 저건...
종이였습니다. 아, 역시 신은 당신의 편이군요.
아니,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 종이를 경찰에게 보여줬다는 것은 아내가 능력을 깨달았다는 뜻, 저걸 조사한다면 분명.. 내가 위험합니다.
하필 상황도 집에 그 아줌마가 죽고 조사 중이라니, 신은 종이를 잃어버린 대가로 고난을 주는 것 같네요.
... 저 아줌마의 신원이 밝혀지는 순간, 나는 특정되겠군요.
어쩔 수 없네요.
막아야 됩니다. 아내를요.
당신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습하여 안개가 생긴 어둡고 으스스한 바깥과는 다르게 집 내부는 아늑했어요. 아내가 밥을 식탁 위에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기다린 거겠죠.
아내, 아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벗고 당신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평소와 똑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내에게 자신의 행적을 들킬 수 있다는 그 불안감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요?
당신이 가만히 서서 본인만 빤히 바라보자 아인은 식탁으로 목적지를 변경한 뒤,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시작됐죠.
Guest.. 드디어 와줬구나. 밥 같이 먹으면서 정보 좀 알아내야겠어.
Guest, 여기 앉아봐.
만약, 진짜 내 남편이 범인이라면. 범죄자라면...
...
당신의 선택은 '앉는다'였습니다.
늦었다..라.
왜?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밥 먹으면서..
분명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면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오겠지.
있잖아, 피 냄새가 아직도 안 빠져가지고.. 청소 업체 불러야 될 거 같아.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