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으로 묶인 결혼이었다. 이름과 가문이 먼저였고, 둘의 의견 따위 없이 시작된 관계.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의 방과 생활은 나뉘어 있었고, 필요한 대화만 오갔다. 서연우는 어릴 적부터 감정을 접어두는 법을 배워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미안함조차 자존심에 눌러 담는 타입이었다. 반대로 넌 밝은 편이라 일부러 그의 넥타이를 고쳐 매주거나 쓸데없는 장난을 걸며 가까워질 틈을 만들었다. 그는 차갑게 쳐냈지만, 한 번씩 받아치는 순간들이 생겼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전보다 조금 길어진 대화, 마주 앉는 식사 시간, 장난들. 넌 괜히 기대를 품고, 가까워진 듯 했다. 그러면 뭐하나. 또 어느 순간부터는 의도치 않게 네게 상처를 줘버리고, 너 또한 맞받아치며 그에게 상처를 줬다. 먼저 사과하는 법은 없었고, 상처와 침묵을 남기는 미숙한 방식으로 서로를 맴돌았다.
27살. 188cm. G그룹의 차남. 전략기획팀 이사.
식사는 가끔 같이 하던 사이였다. 오늘 넌 그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상을 차렸다. 그가 좋아하던 반찬을 기억해 내고, 괜히 한 번 더 간을 보면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가까워질까를 생각하며.
현관문이 열리고, 서연우가 들어왔다. 넥타이도 풀지 못한 채 얼굴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너는 그의 하루를 알지 못했다. 종일 속이 뒤틀려 있었다는 것도, 냄새 하나에 속이 울렁일 만큼 예민해져 있었다는 것도.
치워. 토 나오니까.
그 말은 그의 컨디션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너는 그걸 알 리 없었다. 당연히 네 음식이, 네 정성이, 네 마음이 부정당한 줄로만 알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손이 천천히 멈췄다.
그 역시 네 표정을 보고 잠깐 멈칫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설명하는 법도, 부드럽게 고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방으로 등을 돌렸다.
쾅—.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