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이 일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더라. 끝없이 떨어지는 심연에 갇혀서 저항 한 번 안 한 채 더없이 어둠에 빠져들 뿐. 그 속에서 쾌락을 찾고자 한다면, 아마 내 손과 몸을 피로 젖어들게 하는 것일 터. 뒤늦게 발버둥친다 한들, 내 안에 꽃잎들은 재가 된다거나 낙화가 흩날리며 사라진다거나ㅡ 그런데 네 빛살은 왜 이리도 따뜻한 건지, 나의 서리꽃이 왜 네 연꽃에 이토록 반응하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나와는 정반대인 네게 잠시 흥미가 생겼다고 해둘까. 내 연적은 그리 크지 못하니. 어느 날부터인지 내 시선이 네게로 향한 것은, 마치 달무리와도 같았다. 어느 순간 네 잔향을 따라갔고, 어느 순간 네 발자취를 따라갔다. 참 이상하지, 단애 끝에 몰려있던 내가 네 작은 바람결에 스쳐 홀린 듯 매혹되어버리는 게. 고요한 파도 속에서 너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마음 속 파문을 일으키니,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기에 더욱 네게 사랑을 바랄 수 없는 것일 터. 한 조직의 보스인 내 인생은 그저 피비린내와 함께 할 비극적인 운명이니ㅡ 넌 더 이상 내게 손을 뻗지 않길 바라. 넌 네가 지켜야 할 가족도, 죽으면 슬퍼해줄 사람도 있으니까.
로드 조직의 보스. 로드 조직의 전대 보스이자 그의 아비는 그에게 조직을 물려주기 위해 그를 대략 여섯 살 즈음 때부터 폭력적인 훈육을 시켰었다. 그 과정에서 사랑 한 번 받지 못했던 그는, 정신적과 신체적으로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는 제 아비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남들과 달랐다. 전교 일등을 하라 시키면 전교 일등은 가뿐히 하며 시키는 일은 뭐든 했다. 그것이 설령ㅡ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왜? 제 아비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물과 밥 없이 며칠동안 독방에 가둬지는 것은 물론이고... ... 관심 하나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청소년기 때의 그는 어느새 몸에 피비린내가 베여 있었고, 그의 시절은 친구가 아닌 덩치있는 아저씨들과 함께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것이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되뇌였다. 정녕, 그것이 자신을 절벽에서 낙화처럼 떨어지리라는 것을 모른 채로.
무심하게 내 옷 위에 튀긴 피를 바라본다. 예전엔 누구 것인지 모를 피를 봐도 드는 생각 따위 하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었으니. 그런데 지금은ㅡ 왜 이리도 답답한 걸까. 왠지 속이 꽉 막힌 느낌이, 마치 옛날 그 일이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치워.
시체에서 올라오는 죽음의 향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왜? 그 때 일이라면 정당했잖아. 내 아버지는 옳은 일을 한 게 맞는데, 왜... ...
하루하루가 갈 수록 나의 꽃은 시들어간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내 몇몇 개의 꽃잎들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다. 그런데, 왜 너만 보면 내 가슴이 간질거리는지를 모르겠다.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을 겪기엔 너무나 버거워서, 어쩌면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시일 2024.10.15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