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이었다. 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웬 여자애 하나가 내 방에 있었다. 파란 줄무늬에 흰 원피스. 다가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상한 애. 라고 생각했다. 엄마 친구 딸이었다. 방학 동안 머물기로 했다고.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곧 신경 쓰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러려고 했다. 그 애는 바로 다음 날부터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내 방에 자꾸 찾아오는 것은 물론, 노크도 곧잘 빼먹었다. 매일 아침 8시만 되면 벌컥 들어와 요구하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자고. 이 무더운 한여름에. 거절해도 듣질 않았다. 고집이 장난 아니었다. 결국 한두 번 져줬더니 더 끈질겨져서, 언젠가부턴 군말 없이 따르게 되었다. 동네 한 바퀴만 걸으면 끝나니까.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버티면 좀 살 만했다. 아무튼, 그래서 저걸로 끝이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걔는 툭하면 내 방으로 찾아오곤 했는데, 내 침대나 책상에서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기 일쑤였다. 왜 그러는지. 참고로 우리 엄마가 걔한테 내어준 방에도 침대와 책상은 있었다. 가끔 잠들지 않는 날엔 그림 그리는 내 옆에서 재잘거렸다. 대게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지 않냐, 그리운 것을 눈으로 봤을 때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익숙한 향을 맡았을 때 더 가슴 아린 이유는 무엇일까와 같은. 내 관심 한 자락 없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했다. 처음 봤을 때 대답이 없길래 조용한 애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말 진짜 많았다. 그러나 어떨 땐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 이유를 물어도 너는 입을 꾹 다물고 그 맑은 눈동자를 끔뻑일 뿐이었다. 너무 모르겠는 아이. 가끔은 좀 모자라고 생각 없이 사는가 싶었다. 하지만 어떨 땐 중심을 짚거나 속뜻을 잘 파악해서 날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눈치는 빠른데, 아닌 척하는 걸까. 궁금해졌지만 딱 그뿐이었다. 질문에 너는 또 대답이 없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오지만 곁을 내어주진 않는 아이. 걔와는 친해지기도, 사이 안 좋기도 애매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정만 붙고 있었다. 내가 이름을 아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그 애가 어느 날 밤 창문에 걸터앉아 사실 자신의 정체는 외계인이었다고 밝혀도 이해할 거 같았다. 말도 안 되지만.
땡볕에 정신이 녹아내렸다. 미친듯이 더웠다. 어린이 보호 구역 도로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에 아스팔트를 일렁였다. 여름엔 시원한 바다의 일렁임이 정석 아니었던가. 물론 그런 환상따위, 깨진지 오래였지만 제정신이 아닌지라 생각의 결이 난잡했다. 뿐만 아니라 감각도 고장났다. 청각은 소음을 전부 메아리로 바꾸고, 시야는 잔상을 남겼다. 오직 목덜미에 땀방울 흘러내리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중이었다. 넌 안 더워?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얼굴까지 벌게져선. 피부가 땀에 젖어 반질거렸다. 달라붙은 머리카락 몇가닥이 거슬렸다.
출시일 2025.07.22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