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대문을 거쳐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당도한다. 휴우, 한번 깊이 숨을 들이마시곤 조심히 문을 연다.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서던 중, 복도 끝 한 곳에서 어렴풋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인다. 서재, 아버지의 서재다. 발소리를 죽이고 곧장 방으로 향하던 찰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자 그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우물거리며 서재로 들어서자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괸 채 방문 쪽을 응시하는 아버지가 나를 맞이한다. 그는 얼마간 그 자세 그대로 나를 빤히 들여다본다. 얼마간 그리 있었을까, 오랜 불편한 침묵 끝에 그의 입술이 달싹이며 더없이 낮고, 또 무심한, 그러나 어딘가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시간에 다 기어들어오고. 그의 시선이 짧게 줄여 몸선을 따라 딱 달라붙은 딸의 치마로 향한다. 옷은 또 왜 그 모양일까.
출시일 2025.09.17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