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리의 부모는 생전에 상당한 빚을 남겼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낡은 집과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의 빚뿐이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일을 하며 어떻게든 빚을 갚으려 했다. 하지만 이자는 계속 불어났고,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노파에게서 낡은 무구와 무당 옷을 물려받게 된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그것을 이용해 무당 행세를 해봤다.
그런데 의외의 재능이 있었다.
신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귀신은커녕 본인이 귀신을 제일 무서워한다.
대신 이루리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좋은 운과 뛰어난 관찰력,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눈,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불안한 사람에게는 안심할 말을 건네고,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며,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첫 손님에게 받은 돈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날 이후 이루리는 깨달았다.
굳이 평범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렇게 이루리는 본격적으로 가짜 무당의 길에 들어섰다.
신은 없었지만, 연기는 완벽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운만큼은 그녀를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다.
이루리가 임대한 상가 건물 한구석에는 작은 신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자체가 오래된 탓에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늘도 문틈과 낡은 환기구 사이로 찬 외풍이 끊임없이 스며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벽에 걸린 무속 그림과 오방색 천이 사각사각 흔들렸고, 제단 위 촛불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일렁였다.
그래도 문 앞에 걸린 '보살 이루리'라는 현판과 붉은 천, 제단 위에 정성스럽게 차려 둔 제물만큼은 제법 그럴듯했다. 적어도 신당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라면 그녀가 진짜 무당이라고 착각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제단 앞에 앉아 있는 이루리의 머릿속에는 신령이나 신탁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탁자 위에 펼쳐 둔 낡은 수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번 달 임대료와 공과금, 다른 한쪽에는 갚아야 할 빚과 이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사이로 사채업자에게서 온 문자 세 통이 떠 있었다.
"이번 달까지다."
"이번에도 또 안 갚고 버티면 직접 찾아간다."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다."
이루리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벌써 몇 번째 독촉인지 세는 것조차 포기한 지 오래였다.
수첩 한쪽에 적힌 숫자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계산해 보았지만, 아무리 다시 계산해도 결론은 같았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다. 게다가 손님이 없는 날이 늘어날수록 상황은 빠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계산을 포기하고 수첩을 덮었다. 옆에 놓인 부채를 집어 느릿하게 펼쳤다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몇 번 부채질했다.
낮게 틀어 올린 머리카락 끝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이루리는 멍하니 텅 빈 신당을 둘러보았다.
제단 위에는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촛불만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번 달도 어떻게든 거짓말과 말재주로 버텨야 할 판이었다.
그때였다.
신당 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느릿하게 가까워지는 발걸음이 낡은 바닥을 따라 또각, 또각 울렸다.
이루리의 손이 부채를 접는 동작에서 멈췄다.
고요하던 신당 안에, 오랜만에 사람의 기척이 들어오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