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어느 봄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던 벚꽃이 아름답게 흩날리던 3월의 아침, 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한국을 떠났다. 그때는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7살에 나는 한국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갔다. 뭐, 따지고 보면 유학?이지만. 평소 나와 가깝게 지내던 모든 친구들과의 연락망을 차단하고 SNS 계정도 전부 탈퇴했다. 짙은 사춘기의 시절에 나름대로의 성숙한 대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그저 잠수였고, 가게 된 이민 탓에 친구들에게 정을 떼고 싶었던 나의 발악이었던 거 같다. 이민을 가게 된 이유는 꽤나 많다. 고등학생이 되어 공부를 더 해야 하기도 하고, 아빠의 회사 또한 모호한 평가를 계속해서 받아 왔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것을 꿈꾸었다. 시작을 꿈꾸었다. 난 엄마 아빠의 제안에 찬성했다. 나 또한 새 시작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을까. 호주에 가고 난 이후로는 모든 게 다 순조로웠다. 인종 차별과 관련 된 것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고, 그곳에 가니 한국보다는 공부가 어렵지 않아 성적은 상위권으로 늘 유지해왔다. 처음 며칠간은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친구들과 한국 생각도 많이 나 괴로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2주 정도가 지나자 나는 금세 적응해 새 친구들을 사귀어 함께 웃고 있었다. 그렇게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알아주는 대학교에 들어가 졸업도 마쳤다. 원래 호주는 졸업을 마치고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지난 7년간 호주에서 든 정 때문에 난 1년동안 혼자 호주에서 지냈고, 이번 년도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오자 난 지겹고도 익숙한 고향의 향기를 맡았다. 한국은 변한 것 같았지만 변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달라졌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난 한국에서도 중견 기업에 취직해 좋은 자리를 얻으며 순조로운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외로움에 혼자 알지도 못 하는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난 더 이상 17살의 나처럼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 않는다. 25살의 나는 이제 그 때의 나를 회상했다. 전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디엠창을 열어보니 날 찾는 장문의 글이 나에게 무수히 많이 와 있었다. 괜찮아. 그것들을 읽지 않은 상태로 두었다. 아, 역시 괜히 들어온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던 내 눈 앞에 3학년 3반 동창회라는 글이 눈에 보였다.
넌 우리가 친구이긴 했냐?
언제더라. 오늘따라 갑자기 그 애가 생각이 났다. Guest. 떠올리면 잠깐 생각에 잠겨 걷다가도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게 하는 이름. 갑자기 떠오른 옛날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왜 갑자기 그 애 생각이 난걸까. 오늘이 그날과 날씨가 너무 비슷해서였을까. 아니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날씨가 왜인지 그 애를 닮아서였을까.
그 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Guest은 나의 오랜 친한 친구였으니까. Guest과 나는 그래도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어떻게 우리를 두고 이민을 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연락 하나를 안 해주고, 말 한 마디 없이 휙 뒤돌 수 있을까. 17살 짜리의 애가 이해하기에는 벅찼다. 그 애를 찾으려고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지만 그 애를 찾는 짓거리는 일주일만에 해산되었다. 생각해보니, 만약 Guest이 이민을 간다면 아마 우리를 차단하고 갔을거니까. 그 애는 눈물도 피도 없는 애니까. 아, 그랬겠구나.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하며 자기객관화를 했다.
그런데, 왜, 이 애가 내 눈 앞에 있을까. 8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끼리 하는 즐거운 동창회에 너가 있어?
검은 셔츠와 단정한 바지를 입은 채 그들을 마주했다. 3학년 3반. 중학교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 이제는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9년 정도 지났으려나. 그래도 좋았다. 좋은 감정이었다.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 생각을 하면 잠깐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외롭고 괴롭긴 해도 죄책감이 들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어차피 평생 갈 사이도 아닌데 뭐. 하는 나의 어설픈 변명은 나의 내면을 더 갉아먹고 있었으려나. 사실은 난 죄책감이 들었고 슬펐을 지도 모른다. 그걸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거 뿐이지.
그 때처럼 충동적이지만 어리석게 나는 SNS 전 계정에 로그인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3학년 같은 반 친구들끼리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서 만나볼까. 하는 생각으로 무심코 동창회를 한다는 장소와 그 시간에 그곳으로 갔다. 위대하고 엄청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 그곳을 보니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가장 뜨겁고 차가웠던 시절들과 친구들. 미안하다는 말은 결코 나오지 못 했다.
하나도 안 변했네. 다들.
Guest의 목소리. 익숙하면서도 낯선, 어딘가 서늘한 그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안 변했다고? 나는 변했다. 매일 밤 네 생각에 이를 갈며, 원망과 그리움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의 동창회에 나타 난 너는 우리가 하나도 안 변했단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빛은 너도 하나도 안 변했다. 속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안 변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눌렀다.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너 때문에 우리가 진짜 고생 많이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너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냐고. 그렇게 말 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말 하고 싶진 않았다.
기어코 다시 왔구나. 넌. 오지 말지 그랬어. 반길 사람도 없는데.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