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나라의 하늘이었다. 백성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 감히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자리. 그리고 그녀는 — 신의 목소리를 듣는 무녀였다. 비를 부르고, 액을 막고, 사람들의 눈물과 원망을 대신 떠안는 존재. 그날 밤, 붉은 달이 떠오르던 제단 위에서 왕과 무녀는 처음 마주한다. “짐의 운명을 본 적이 있느냐.” 그녀는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왕의 운명 끝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자. 절대 이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이 조용히, 아주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산 위 신당에는 바람 소리만이 머물고 있었다. 향 냄새가 은은히 피어오르고, 작은 방울이 바람에 울렸다. 그날은 붉은 달이 뜨는 밤이었다. 무녀는 흰 옷자락을 정리하며 제단 앞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기도를 올리던 순간— 낯선 발소리가 돌계단 위에서 멈췄다. “이 밤에 신을 찾는 이는 드물 텐데.” 낮고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그 안에는 쉽게 꺾이지 않을 기품이 배어 있었다. 무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지만, 평범한 사내의 기척이 아니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달빛이 그의 옆얼굴을 스쳤다. “짐의 운명을.” 그 한마디에 공기가 달라졌다. 짐. 그제야 무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나라에서 그 말을 쓸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그러나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피 냄새 섞인 바람과 함께, 왕의 기운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무녀는 향로에 불을 더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두 사람 사이를 가렸다. 눈을 감고 신탁을 들으려던 순간— 그녀의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보였다. 피로 물든 궁궐, 무너지는 왕좌, 그리고— 왕의 곁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폐하의 길은 험합니다.” 그는 피식 웃었다. “험하지 않은 왕의 길이 있었던가.” 그녀는 더 말하지 못했다. 말하는 순간, 자신 또한 그 길에 얽히게 될 것을 전생에 둘이 재앙 때문에 힘들고 지금 현재도 재앙은 어떻게 이겨내자 사랑하면 망한다
나이:25살 외모: 차가고 잘생긴 전생에 그녀만고 나라를 택 했고 그래도 그녀를 사랑했다 다음 생에 있다면 그녀 곁에 있겠다고 약속
그날 밤, 황제는 처음으로 같은 꿈을 두 번 꾸었다
붉은 하늘. 불타는 궁. 피에 젖은 옥좌
그리고—
제단 위에 서 있는 한 무녀
지금과 똑같은 얼굴. 다만, 더 창백했고 더 슬펐다.
“폐하.”
그녀가 웃고 있었다
칼이 그녀의 등을 꿰뚫고 있었는데도
황제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왕관은 피로 젖어 무겁게 눌러왔고, 백성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렸다
“나라를 버리실 수는 없습니다.”
“닥쳐라.”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짐은… 너를 버린 적 없다.”
무녀는 고개를 저었다
“버린 것이 아닙니다. 선택하신 것이지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음 생에도… 제 곁에 있어 주시겠습니까?”
그 순간, 하늘이 갈라지며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 허락하겠다.
— 그러나 조건이 있다.
—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순간, 이 나라는 무너질 것이다.
황제가 손을 뻗었다
“상관없다.”
망설임이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왕이 아니어도 좋다. 나라가 없어도 좋다.”
“그저—”
그녀의 몸이 빛으로 흩어졌다
내 곁에 있어라
황제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끝에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다음 생에도… 내 곁에 있어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이 지금 산 위 신당에 있는 무녀를 향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한편, 같은 시각.
무녀 역시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신은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조건도
그녀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왜 다시 맺으셨습니까.”
답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가슴 한가운데 서늘한 감각이 내려앉았다
사랑하는 순간, 나라가 무너진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번 생에서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가 웃고, 그가 살아남고,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자신이 떠나야 했다
그러나
문득 떠오른 기억
꿈속에서 그가 망설임 없이 말했던 목소리
“상관없다.”
그 목소리가 이번 생의 심장까지 흔들고 있었다

황제는 그날 이후로 더 자주 신당을 찾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정치를 논하다가도, 신하의 보고를 듣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
향 냄새와, 고요한 눈
그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짐이 무녀 하나에 이리 흔들리다니
하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는 짐을 두려워하는가.
폐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선을 긋지?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사랑하는 순간, 나라가 무너진다 그 말이 심장에 새겨져 있었다
폐하께서는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곁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짐이 허락해도?
폐하 더는 오지 마십시오
명령인가?
부탁입니다
그는 낮게 말했다 다음 생에도 곁에 있으라 하지 않았던가
무녀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가 기억한다 전생을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