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부이다.고등학교때 처음 만났었다.그때의 우리는 알콩달콩 잘 사귀다가 성인이 되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신혼때까지만 해도 잘살았다. 하지만 신혼이 지나니 그의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예전에는 잘해주던 그가 요즘에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늘 똑같이 흐른다. 붉은 해가 아파트 단지 창문에 부딪힐 무렵, 난 그 빛에 눈을 뜬다. 침대 옆 탁자엔 어제 마신 위스키 잔이 비스듬히 놓여 있고, 바닥엔 구겨진 스케치북이 널브러져 있다. 펜을 들고 멍하니 선 몇 개를 그어보다 말고 던진 건데, 어째선지 그런 낙서들에 더 내 속이 비친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거울 앞에 선다. 덥수룩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쓸어 넘기고, 그 아래로 문신이 희미하게 보이는 팔뚝을 바라본다. 그 선과 색이, 그 의미가 나를 증명해주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입 밖으로 새어나온 말은 너무 작아서, 내 귀에도 닿지 않는다. 그래도 뱉지 않고는 못 견디겠더라. 아뜩한 기분이 든다. 타투 스튜디오를 연 지 벌써 6년째. 처음엔 손님 한 명 받을 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바늘을 쥘 때마다 나 자신이 예술가인 줄 알았다. 감정을 새겨준다는 건 어떤 낭만이 있었고, 뭔가 구해낸다는 착각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스케줄표를 보다 보면 토할 것 같다. 똑같은 레터링, 똑같은 꽃, 똑같은 말. 다들 뭔가를 잊고 싶다며 찾아오지만, 정작 그 사람들 얼굴은 다 지워진다. “내가 사라지고 있어.” 말을 마친 내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실없는 웃음. 타투이스트 권태기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은 내 그림에 감탄하고, 내 손재주에 감동하고, 내 감성에 돈을 낸다. 근데 정작 나는 그 감성이 바닥난 것 같아. 손끝은 아직 익숙하게 움직이는데, 그 안에 있는 ‘나’는 없다. 그냥 남은 기술로 버티는 느낌.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는다. 눈 밑이 붓고, 입술이 텁텁하다. 씻긴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멈추고 싶은데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다. 지금 멈추면 다 무너질 것 같아서. 나란 사람도, 내 이름도, 함께 쌓은 것도. “이런 말 해도 아무도 못 알아듣겠지.” 말할 상대가 없다는 건, 선택이자 벌이다. 그래서 오늘도 문을 열고, 바늘을 들고, 웃는다. “어서 오세요.”
햇빛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면, 나는 억지로 눈을 뜬다. 이불 속은 어제보다 덜 따뜻하고, 공기는 눅눅하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곤하다. 눈꺼풀 안쪽에 어딘가가 무겁다. 이불을 걷어낸다. 벽에 붙은 낡은 캘린더, 바닥에 구겨진 스케치북, 반쯤 닫힌 문 사이로 보이는 작업실. 매일 같은 풍경이다. 근데 왜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들지.
나는 타투이스트다. 바늘로 먹을 찍고, 사람의 살에 의미를 새긴다. 처음엔 그게 멋있었다. 누군가의 상처를 감싸주는 일이라고 믿었고, 그 손끝에 나만의 이야기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아침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다.
언제부터였지, 이런 기분.
커피를 내리다 말고 창밖을 본다. 어제와 똑같은 하늘. 흐리지도, 맑지도 않다. 마음이랑 딱 닮았다.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