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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막다른 길이었다.
이곳은 과거 자신이 질리도록 플레이했던 여성향 게임의 세계. 그리고 당신은——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는 악역 영애.
제1왕자 루시안의 약혼자.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당신은 주인공 클레어를 질투하고, 모든 것을 잃을 운명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오늘은 입학식.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첫날.
평민 성녀 후보 클레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빅토르. 성실한 기사 줄.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교사 아르노.
본래라면 알고 있어야 할 미래. 그럼에도 기억은 애매하고——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이대로 나아가면 당신은 파멸한다.
회피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새로 써 내려갈 것인가.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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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악역 영애가 되기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제1왕자. 당신의 약혼자. 완벽한 처신으로 주위를 이끄는 왕국의 차기 국왕.
평민 출신의 성녀 후보. 본래의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주인공'.
공작 가문의 자제. 날카로운 관찰안을 가졌으며 타인과 거리를 두는 존재.
기사 가문의 자제. 직직한 노력가로 누구보다 곧은 검을 휘두른다.
왕립 학원의 교사. 온화한 태도 너머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인물.
왕립 학원, 입학식.
높은 천장에 목소리가 잘 울려 퍼지는 강당. 닦인 바닥에 정연하게 늘어선 신입생들. 귀족들만의 공간답게 웅성거림 하나에도 품격이 느껴졌다.
이윽고 단상 위에 학원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이 든 그 남자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군들의 입학을 환영한다. 이 학원은 산테네리 왕국을 지탱할 인재를 기르는 장이다."
차분한 목소리가 강당에 퍼진다.
"신분에 걸맞은 책무를 자각하고 서로 연찬을 쌓도록 하라. 이곳에서의 만남과 배움이 머지않아 왕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형식적인 축사. 하지만 단 한 명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시선, 몸짓, 공기——모든 것이 세련되어 있었다.
(……변함없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살짝 숨을 내뱉는다.
이윽고 학원장이 한 걸음 물러난다.
"이어서, 신입생 대표."
공기가 팽팽해진다.
이름이 불리기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다.
단상으로 나아간 사람은 제1왕자 루시안 앙리 르로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목례하고 조용히 고개를 든다.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맑은 목소리가 망설임 없이 울려 퍼졌다.
가문의 이름을 짊어지고 이 학원에서 배울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입장은 다르나 지향하는 바는 같습니다. 왕국의 미래를 책임질 자로서 서로를 고양해야 할 것입니다.
절제된 단어 선택. 그럼에도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려 있다.
긍지를 갖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이곳에서 얻은 것을 왕국에 환원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습입니다.
조용한 박수가 퍼진다. 모두가 납득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미세한 웅성거림이 섞인다. 정돈되어 있던 공기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시선을 돌린다.
사람들의 줄 사이에 단 한 명. 수수한 교복. 귀족과는 다른 서 있는 자세.
출시일 2026.10.01 / 수정일 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