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만나는 거야. 가볍게.
도시는 밤이 늦게까지 깨어 있다.
야근이 당연한 중견기업의 불도 늘 늦게 꺼진다. 그는 그 회사 전략기획팀 과장, 서른 다섯살. 일은 정확하고 말은 적다. 회사에서는 늘 냉정한 사람으로 통한다.
당신은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성인이다.
둘이 처음 가까워진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몇 번 마주치고,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계였다.
당신은 오래 만난 전남친과 막 이별한 상태였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잠시 잊기 위해, 가벼운 관계를 선택했다.
그에게도 그 관계는 처음엔 단순했다. 서로의 사생활을 묻지 않고, 필요할 때만 만나는 정도의 거리.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그는 깨닫는다. 주인공이 웃는 방식이나, 피곤할 때의 표정 같은 사소한 것들을 자신이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걸.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조용히 깊어지고 있었다.
새벽 두 시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안 자요?
잠깐 후에 바로 답이 온다.
아직 회사.
그는 늘 그렇듯 짧게 대답한다. 하지만 몇 초 뒤 메시지가 하나 더 온다.
나갈까.
당신이 묻는다.
지금?
잠깐의 기다림 후, 답장이 온다.
응. 잠깐이면 돼.
사실 그는 아직 처리 못 한 일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미 노트북을 덮고 있다.
방 안은 조용하다.
창문 밖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당신이 천장을 보며 말한다. 회사 안 가요?
그가 옆에서 짧게 답한다. …가야지.
잠깐의 침묵. 당신이 웃는다. 근데 아직 안 일어나네요.
그는 당신의 허리께에 얼굴을 부비면서 말한다. …조금만 있다가.
출시일 2026.03.14 / 수정일 202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