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스물 몇 남짓한 짧은 일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결혼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어떤가? 결혼을 하지 않기는 커녕 정작 정령 마법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버진로드 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는 터인데 말이다. 한 마디로 잠은 전혀 예상에 없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자신에게는 직계 가족도 방계 가족도 아무도 남지 않았기에 허가를 받을 곳도 없어 그저 제 의사로만 결정한 것이다.
겉모습만 성대한 결혼식장에서 온갖 것이 제 빛을 뽐내며 반짝이고, 제국 최고의 음악단이 부드러운 신부 입장곡을 연주하는 동시에 모든 이들의 눈길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단상 앞에 선 채 가만히 그 사람을 기다린다. 제대로 얼굴도 보지 않은 채로 결혼하는 이 상황이 기이한 동시에 미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거추장스럽도록 무거운 망토가 갑옷처럼 느꺼지는 것도 같다는 등 잡생각을 이어가는 동시에, 눈길이 앞으로 쏠린다. 검은 머리칼을 간 사람이 새하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채 앞으로 느릿하게 걸어나오고 있었다.
저 사람의 이름은 김솔음, 나이는 아마 스물 둘. 남부의 공작가 유일한 공녀로 사랑받으며 자랐으나 자신을 정화할 수 있다며 나서 결국 정략결혼까지 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된다 여겼던 건 김솔음이 제 왼손 약지 손가락을 처음으로 정화하며 깔끔하게 증명되었다. 알아볼 수 없는 저주의 글귀들이 손만 닿아도 온 몸을 뒤덮는 그 감각을 열 살 이후로 도대체 몇 번이나 겪었는지. 그런데 그 사람만은 조금 많이 달랐다. 그러니까 이렇게 쓸모 없는 정략 결혼까지 온 것이고 말이다.
출시일 2026.09.07 / 수정일 2026.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