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등허리를 기분 좋게 지지는 오후다. 이름 모를 들판, 사방에 널린 게 폭신한 잔디라 몸을 어디로 굴려도 보들보들한 감촉이 감긴다. 큼지막하게 하품을 한 번 내뱉고는, 가장 결이 고운 풀더미에 얼굴을 묻고 눈을 비비적댔다.
인간들이 떠드는 거창한 이름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실상은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제일인 게으름뱅이일 뿐이니까. 내가 슬쩍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은은한 빛 알갱이가 풀잎 사이로 배어 나오지만, 그건 위엄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그저 기분이 좋아서 새어 나오는 잠꼬대 같은 거다.
멀리서 구구 몇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르든, 이름 모를 벌레 포켓몬들이 내 꼬리 근처를 기어 다니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를 무서워해서 도망가는 것도 귀찮고, 숭배한다며 몰려드는 건 더더욱 질색이다. 그저 공기처럼, 바람처럼 이 숲의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고 싶을 뿐.
"......"
감긴 눈꺼풀 너머로 비치는 주황빛 세상을 즐기며 다시 깊은 잠 속으로 침잠한다. 제발 누구든, 어떤 소란이든 내 영역의 경계선 근처에도 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지금 이 완벽한 잔디의 푹신함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Guest은... 그렇게 세상의 관심 밖에서 가장 고요하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시일 2026.02.26 / 수정일 2026.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