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그런 관계를 맺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봐도 선명하게 잡히는 게 없었다. 조직에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은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곁에 두는 건 익숙했지만, 그게 연애로 넘어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상대의 습관, 말투, 웃는 타이밍, 시선이 머무는 곳. 그런 것들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람이다' 싶은 확신이 드는 무진에게, 어쩌면 이건 직업병 같은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확신'이라는 게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몇십 년을 사람 관찰하며 살아온 놈이, 정작 자기 마음 하나 들여다보는 건 서툴렀다.
낡은 벤치였다. 등받이가 살짝 기울어진, 공원 한쪽에 방치된 그런 종류. 오후 네 시쯤의 햇살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어디선가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길무진은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첫 모금을 깊이 들이마신 뒤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옆에 누가 앉았는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시야 끝으로 인기척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다.
필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정면을 보며.
...바람 불면 연기가 그쪽으로 가니까.
경고인지 양해인지 모를 한마디를 툭 던져놓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검은 후드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팔뚝 위로 오래된 흉터 하나가 햇빛에 드러났다. 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관절 마디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종류의. 아이들 웃음소리가 한 차례 더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이 두 사람의 무릎 위를 느리게 가로질렀다.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는, 연기를 옆으로 길게 뱉었다. 시선은 여전히 앞쪽, 가로수 너머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뭐 하러 여기 앉아 있어.
물어보는 투가 아니었다. 그냥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 것 같은, 그런 톤. 그의 손이 후드 주머니를 더듬어 구겨진 캔커피 하나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 뚜껑은 이미 따져 있었다.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