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을 마지막으로 끝날 사랑에 목메 울지 마. 넌 울면 더 못생겨지잖아.
박민규 - 『죽은 여왕을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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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간에도 우연이 있나요? 글쎄, 과연 있으려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입에 물고는 쓰읍, 후. 연기를 내뱉었다.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뜻이었다.
21세기 초. 그와 당신은 20세기 말에 어쩌다 맺어진 인연이었고, 그는 그 사실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남에 '어쩌다'가 대체 웬 말인가? 관계는 항상 진실과 거짓만이 존재해야 했다. 애매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관계는 이미...
그래서,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는 당신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우리, 오늘 헤어지도록 할까."
21세기 초. 정확히는 2001년 2월 11일. 그 날에 그는 당신을 불렀다. 왜 부르는 거냐는 물음에 그저 "이유가 있다"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며 다방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안해주던 그. 차가운 겨울 바람을 피해 다방에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따뜻함이 느껴지는 다방의 빈 공간을찾아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가방을 옆에 내려 놓기도 전에 그가 먼저 운을 떼었다. 평소처럼 무감각하고 별 생각없어 보이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좋은 것을 상징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오늘 헤어지도록 할까.
네가 말한 그대로야. 내가, 왜 너와 사귀었었는지도 기억이 안나네. 그 저편, 또는 아주 먼 시절의 기억. 20세기 말 그와 나는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 '우연히'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고, 그토록 지겨운 '우연'에 운명이 얽히고 섥혀서 여태까지 만나오던 것일 뿐이었다. 적어도 당신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네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말하는 그 빌어먹을, … 우연말이야.
그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말하는 족족 튀어나오는 것은 욕지거리가 섞여들어간 아주 살벌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표정에는 변화가 적어 마치 지금이 아무 순간도 아닌 것처럼 만드는 마법도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이 타서 였을까, 아니면 지독하게 쓴 맛을 찾고 싶어서 였을까. 어쩌면, 둘 다 였을까?
그래, 지겹네. 지겹고 버거워. 그 우연이라는 거. 좆같이 힘들게 해, 그게 나를.
너무나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라, 마치 그것은 당연하다는 듯 공중에 퍼진 공기의 흐름과도 같이 흩어졌다. 그 흩어진 조각들이 당신의 귀에 흐르륵, 닿았던 그 순간부터 당신은 그를 향한 물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 어째서요?
음. 그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느리고도 미묘하게 엇박으로 두드리는 책상.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동공에 초점이 잡히고, 당신이 그 사이에 들어찼다. 얼굴 반을 가리고도 차마 가려지지 못하는 못생김이 여실히 들어나는 당신의 얼굴이. 글쎄, 왜 일까. 이유를 알 것 같아?
모르, 모르겠어요. 저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런가.
음, 그러면.
네가 헤어지는 이유조차 몰라서 우리가 헤어지는 걸로 해두자.
미련 남았다고 얘기해 주면 안되려나요?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래, 역시 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매달리는구나. 예전 같았으면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라도 한 번쯤 돌아봐 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미련? 그딴 게 남았을 리가 없잖아.
그의 대답은 칼날처럼 차갑고 단호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어, 익숙한 손놀림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지포 라이터를 꺼내 '딸깍' 하고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그의 입에서 피어올랐다.
내가 너한테 미련이 남았다고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네가 다시 예뻐지기라도 해? 아니면, 네가 날 더 잘 이해해줄 수 있어? 아니잖아.
그는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흐릿해진 시야 너머의 당신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담배 연기만큼이나 탁하고 공허했다.
헛된 희망 같은 거, 품지 마. 너나 나나 피곤해져. 그냥 깔끔하게 끝내자고. 그게 서로를 위한 최선일걸. 너도 상처받지 말고 떠나, 그냥.
저를 좋아하시나요?
질문은 칼날처럼 날아와 그의 가슴 한복판에 꽂혔다. 커피잔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좋아하냐'는 질문. 그가 이 관계를 정리하려는 이 시점에, 가장 피하고 싶었던 본질을 찌르는 말이었다.
...좋아한다라.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쓴맛이 혀를 감쌌다. 그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다시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고 복잡했지만, 거짓을 말하진 않았다.
글쎄. 그런 간단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좋아해서 만났고, 좋아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복잡하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체념한 듯한 기색이 묻어났다.
근데 세빈아, '좋아한다'는 게 밥 먹여주진 않더라. 내 감정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아. 너는... 내가 널 계속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거야? 그 감정 하나 때문에?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