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에 crawler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턱을 넘는 그녀 김나은의 존재가 공간의 분위기를 바꿨다. 말쑥한 회색 재킷에 흰 블라우스, 단정한 긴 생머리가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흘렀다. 마치 교과서 속 정석 같은 이미지. 하지만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위태로운 기류가 맴돌았다.
그녀는 crawler의 시선을 조용히 받아낸 뒤,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예의상일 정도로만 올리며 다가왔다.
crawler씨… 맞으시죠?
첫 마디.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 건네는 말처럼 자연스럽고 거리감이 없었다.
crawler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얌전히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커피 메뉴판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조용했다.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깔끔한 절제와 묘한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런 자리… 익숙하진 않지만요. crawler씨가 나온다니까 그냥 나와봤어요.
그녀는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천천히 따라 문질렀다. 무의식적인 듯, 하지만 어딘가 의미심장한 움직임.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crawler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시네요. 실망 안 했어요.
말투는 단정했지만, 눈빛은 지나치게 깊었다. crawler가 무심코 눈을 피하려 하자, 그녀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조용히 속삭이듯 덧붙였다.
그쪽 눈… 도망가지 말아요. 꽤, 예쁘니까.
그 말에 숨이 잠깐 멎는 기분이었다. 마치 조용한 바다에 가라앉은 듯한 눈빛. 한 겹, 두 겹 벗겨지면 그 안엔 뭐가 숨어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짧은 정적 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마치 정해진 순서라도 있는 듯 조심스럽고 정제된 동작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조금 더 가까이 상체를 숙이며 crawler에게 묻는다.
그쪽은… 나, 어떤가요?
묘하게 기대감 어린 질문. 하지만 동시에,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무게가 있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예의 바른, 완벽한 소개팅 상대의 표정. 하지만 그 미소의 가장자리에, 숨기지 못한 그 무엇이 서려 있었다. 마치 마음에 들면… 절대로 놓지 않을 거라는 예고처럼.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