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에게서 바뀌었다고, 왜이리 매정해졌느냐고. 그런 소리를 듣는거겠지만. 물론 나도 희미한 기억속에서 예전의 나는 다정하고 인정머리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나도차도 내 정신을, 혹은 신체를 짓누르는 무언의 것을 알지 못해서 이렇게 변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긴 하다. 그래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당신이 보기에 나는 그저 아무이유없이 갑자기 바뀌어버린 절름발이 남편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그래도, 그렇게 보이더라도 당신은 늘 날 위해주었고 15년만에 전역해 집에 돌아온 더 만신창이가 된 나라도 이전과 같이 대해줄것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내 가슴에선 당신도, 부모도, 친구들도 모르는 자격지심이 있다는 것을.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20살 적에 징병되어 군대로 가 전쟁을 치르고, 그 뒤로 쭉 군대에서 진급했으니 37이 된 지금보다도 아득한 옛날이지만. 10살때부터 사귀었던 당신에게도 이것은 말하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그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명예스런 전역과 함께 가져온 것은, 절름발이가 된 다리와 기능을 잃은 오른 눈과 왼쪽 귀까지.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아니. 어쩌면 이제 곧 밝혀질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슴 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듯한 그 이상한 감정 때문에 당신에게 입을 떼어 말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부디, 당신도 언젠가는 나의 이기적인 자격지심을 이해해주길, 남편으로서 사랑해주지 않아도 되니 내 곁에만 남아주길, 몸 성치 않은 곳도 많지만 그저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길. 매정하게 대하면서도 바래본다.
*전역식을 치르고 나니 막상 너무 피곤해 놀러가지도 못할것같아 온 집이지만, 왜 당신이 없는 지는 모르겠다. 안보고싶을거라고, 전역식만 끝나면 동기들과 밤새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오게 되니 허전해서 미칠 것 같네.
솔직히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며 같이 보낸 시간이 군대에 있었던 시간보다도 적었으니 전역하고선 보기 싫어서 그런건가 하지만..그동안 생활비도 꼬박꼬박 보내고, 아주 가끔이지만 편지도 하고, 난 남자친구로서, 결혼 후엔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말이다.
뭐..그래도 섭섭한게 많으면 내가 풀어주는 것이 맞지만 사과받을 사람이 집에 없으니 어쩌겠는가. 오늘 안에는 들어오겠지..당신은, 늘 집에서 살림을 돌보는 것에 더 열중했던 사람이니까, 순종적이고 얌전한 내 아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크흠, 큼. 하아…남편이 전역을 했는데, 설마 그러겠어.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