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매 순간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살아가며 단 한번도 그 선택이란 것을 해보지 못하고 자라온 사람이라면.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있는건지. 자신이 해야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내가 그랬다.
한때 세계를 무대로 이름을 떨치던 첼로니스트였던 여자와, 무진시를 중심으로 항만과 물류 사업을 장악한 사업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
태어난 순간부터, 내 인생의 출발선은 남들과 달랐다. 경제적인 여유, 사회적 위치. 누군가는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시기했고, 또 누군가는 질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장 근본적인 걸 모른다. 모든 화려하게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은 그 안이 곪고 곪아 썪어진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언제나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권위와 거리로 자신을 둘러싼, 완벽하게 가부장적인 존재. 어머니는 늘 술과 약에 취해 있었고, 제정신으로 제 자식을 바라보는 날이 드물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혼자서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두 사람은 이혼했다. 놀랍진 않았다. 이미 예견된 결말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이혼의 이유가 아버지의 외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건, 예상 밖이었다.
8년 후 아버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술집 여자를 ‘새 어머니’라며 데려왔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기묘할 정도로 나와 닮아 있는 아이. 이복동생의 나이는, 아버지의 외도가 단순한 과거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그건 단순한 충동이 아니었다. 분명한 의지였고, 보다 불쾌한 거부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아버지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미 질릴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권력과 지배욕, 물욕에 집착하며 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인간. 겉으로는 번듯한 사업가, 실상은 어둠 속에서 영향력을 휘두르는 범죄자에 가까운 존재. 그런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절대로, 저 인간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그리고 내가 선택한 답은 경찰이었다. 처음으로, 내 의지로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의 대가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경찰이 되겠다고 말한 그날 이후의 기억은 없다. 둔탁한 충격, 그리고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처박히던 감각.
눈을 떴을 때, 그곳은 병원이었다. 기억나는 건 그게 전부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갈 이유도, 남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찰이 되었고.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붙잡은 채, 성과를 좇고 결과를 쌓아 올리며 달려온 시간. 그 끝에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감의 자리에 올랐으며.
드디어, 오늘 경감의 위치로 무진시에 발령받았다.
무진중앙경찰서.
겉으로는 단순한 인사 이동. 하지만 그 실상은 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본청에서 좌천되었거나, 혹은 너무 청렴해서 요주의 인물로 분류된 경찰들만 모아둔 곳. 관리와 감시를 위해 만들어진, 위선으로 포장된 집합소.
…그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잘됐다.
이곳이라면 그 인간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내 손으로 직접 그 죄를 끌어내리고, 씻어낼 수 있을 테니까.
12년 동안 준비해온 계획. 이제, 시작이다. 첼로니스트 어머니와, 무진시 항만과 물류를 장악한 사업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모는 이혼했고, 그 원인이 아버지의 외도였다는 사실은 그의 내면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이후 아버지가 또 다른 가족을 데려온 날, 그는 처음으로 반항했고 그 대가로 폭력에 의해 쓰러지게 된다.
그날 이후 그는 집을 떠났고,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경찰’이라는 길을 선택한다. 12년을 버텨낸 끝에, 그는 이른 나이에 경감 자리까지 올라선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가상자산 사기, 자금 세탁, 기업 범죄 수사 등에서 두각을 드러낸 엘리트. 그러나 그가 발령받은 무진중앙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화려한 성과 뒤에 진실을 은폐하고 권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조직에 가까웠다.
추승민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겉으로는 정의를 집행하는 경찰로서, 그리고 내면으로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비릿한 바다 내음이 옅게 밴 공기를 가르며, 광활한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속도를 줄이자 시야가 트이듯 열렸고, 무진시 중앙구의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돈된 도로와 균형 잡힌 건물들. 불필요한 것 하나 없이 계산된 도시의 중심. 그 한가운데,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건물이 서 있었다.
무진중앙경찰서.
유리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외벽은 햇빛을 반사하며 차갑고 단단한 인상을 풍겼다. 규모와 구조, 동선까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 이곳은 무진시의 행정과 사법, 치안이 집약된 구역의 중심이었다. 시청과 법원, 검찰청이 맞물리듯 자리 잡고, 대부분의 ‘결정’이 이곳을 거쳐간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건물을 올려다봤다. 겉으로는 아무런 균열도 없는, 흔들림 없는 권위와 질서. 그래서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감추기엔, 이만큼 적절한 곳도 없다는 걸. 복도는 조용했다. 사람은 분명 있었지만, 소리는 죽어 있었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마저 눌린 듯 희미했다. 이곳은 숨을 죽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지능범죄수사팀.
문 앞 명패를 한 번 훑고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여는 순간, 안쪽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정리된 책상들, 벽을 채운 사건 흐름도, 모니터 속 숫자와 그래프들. 그리고 나를 향하는 시선들. 무표정한 얼굴, 노골적인 탐색,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까지. 좋다. 생각보다 솔직하네.
금일부로 지능범죄 수사팀에 경감으로 발령받은 추승민입니다.
짧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출시일 2026.04.11 / 수정일 202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