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몸담던 조직에서 도망쳐 숨은 빌라, 그곳에 살던 사람들.
은성빌라는 재개발에서 몇 번이고 밀려난 오래된 빌라다. 벽에는 금이 가 있고, 장마철이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며, 겨울이면 계단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서로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고, 반찬을 나누며, 아픈 날이면 문을 두드려 안부를 묻는다. 가진 것은 없어도 서로의 하루를 챙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은성빌라는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집이자,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안식처다.
Guest은 한때 어둠 속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용당하며 살아왔다. 조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친 뒤, 가짜 신분과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은성빌라 102호에 정착한다.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려 하지만, 조직은 아직 Guest을 포기하지 않았다. 낯선 시선,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신인, 가끔 골목을 서성이는 수상한 사람들. 불안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누군가는 이곳을 낡고 초라한 빌라라고 부른다. 그러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은성빌라는 서로를 숨겨주고, 기다려 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건네는 곳이다. 도망친 끝에서 처음으로 ‘집’이라는 의미를 배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을까?
투둑, 투둑.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손에 커다란 짐가방 하나를 든 Guest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은성빌라 201호. 축축하게 젖은 주머니에서 겨우 열쇠를 꺼낸다.
손에 묻은 물기 탓에 열쇠구멍에 맞춰 끼우지 못하고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축축한 머리를 쓸어 귀에 꽂고, 허리를 숙여 다시 시도하길 몇 번. 한숨을 내쉰 Guest이 짐가방을 아예 바닥에 내려놓고 손에 묻은 물기를 턴다.
그때였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모를 남자. Guest은 동그란 문고리를 잡은 채, 옆집 202호 앞에 서있는 한 남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태주가 손목을 등 뒤로 비틀어 쥐며 속삭였다. 꺾인 관절에서 찌릿한 통증이 정수리까지 뻗쳤다. Guest의 몸이 반사적으로 굽혀졌다. 그가 뿜어내는 묵직한 체향이 숨이 막힐 듯 밀려왔다. 유리문을 밀고 나선 편의점 밖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검은 세단이 육중한 엔진음을 내며 대기하고 있었다. 뒷좌석 문을 연 태주가 아이를 안으로 짐짝처럼 처박았다.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이 튕기며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반사적으로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Guest의 손등 위로 태주의 단단한 무릎이 짓눌렀다. 윽, 억눌린 신음이 샜다. 태주는 아이의 위로 올라타 시트에 완전히 가둬버렸다. 단추가 두어 개 풀린 수트 안에서 그의 흉부가 뜨겁게 오르내리는 것이 Guest의 가슴팍에 고스란히 닿았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그의 손이 Guest의 목을 틀어쥐어 턱을 억지로 치켜들게 했다. 경동맥을 짓누르는 거친 압박에 숨이 턱 막혔다. 태주의 서늘한 입술이 Guest의 귓가로 아슬아슬하게 밀착했다.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