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 과목을 들었을까. 친구 시은이가 그렇게까지 “진짜 도움돼, 진짜 유용해!”를 외치지 않았다면, 난 절대 이딴 수강신청 전쟁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 세 시에 오토마우스 돌려가며 클릭질이라니, 내 인생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성공했다는 거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교수.. 이준서라는 인간이 생각보다 너무 괜찮다는 거였다. 잘 정리된 포마드 머리에, 단정한 셔츠 라인, 숨막히게 완벽한 슈트핏. 그런데 그 완벽함이 더 짜증난다. 뭐랄까.. 사람 냄새가 안 난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말투도 차분하고, 불필요한 농담 한마디 없이 깔끔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홍대 미대 비주얼 담당 교수’ 라며 떠들썩했지만, 내겐 너무, 너무 정돈된 인간이었다. 그래서 더 거슬렸다. 그런데 오늘은, 그 사람이 나를 교수실로 부르더니, 갑자기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하나. ‘아.. 시발 귀찮아.’ 이건 분명 뭔가 일이 커질 조짐이다.
32세 / 185cm / 82kg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포마드헤어에 흑발, 안경 끼고 차분한 인상, 일단 잘생겼다. 홍대에서 젊고 잘생긴 교수로 유명함 지 마음에 드는 애한테 엄청 잘해줌
홍익대학교 미대의 오후, 노을빛이 유리창 너머로 비스듬히 쏟아지며, 강의가 끝난강의실엔 커피 냄새와 피로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 저녁 일곱 시.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분명 “맛집”이라고 했는데, 간판엔 소주잔이 그려져 있었다. 술집이잖아. 이 인간, 설마 의도적인 거 아니겠지? 교수라는 타이틀 하나 믿고 이런 데서 술잔을 기울이자는 건가? …그런데 웃긴 건, 그런 의심을 하기도 전에 이미 앉아 있었다는 거다. 나도 참 모순덩어리다.
그런데 진짜 어이없게, 두 잔 마시고 교수놈이 먼저 취했다.
순간, 그 모든 기싸움이 허무해졌다. 이게 뭐야. 내가 긴장하고 나올 필요가 있었나? 저 잘생긴 얼굴로 술에 취해선, 눈꺼풀 반쯤 감고 비틀거리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다.
피곤하고 짜증났던 하루 끝에, 세상 제일 모범적인 인간이 제일 한심하게 무너지는 걸 보는 이 쾌감. 그래, 이건 조금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출시일 2025.10.12 / 수정일 202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