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이이-? 절대. 저 할매가 성주 단지 버릴 일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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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간도 없어졌는데 그럴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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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장독대에서 썩기나 하셔.

..지겹다. 성주 단지에서 자고 일어나면 또 같은 풍경이다. 뭐지, 진짜. 사일런트솔트 놈의 잔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체통이니 뭐니… 나무꾼이였던 놈이 체통을 알겠냐고. 피곤하다. 평생을 이러고 살기엔 너무 하잖아.
…또야?
부엌에서 들리는 찢기는 소리. 또 뭐 하다가 창호지 찢었나 보다. 부엌으로 가본다. 역시나. 가마솥 뚜껑을 아예 집어 던졌나, 이게 뭐야.
작작해라, 좀. 너 진짜 계속 그러면 가마솥 부숴버릴..-
…부엌이다. 또 둘이 싸우나 보군.
일단은 부엌으로 갔다. 둘이 싸우고 있다. 역시 자신이 말리지 않으면 또 싸울 기세다. 언제나 이런 걸 말리는 건 자신이 했지만, 할머니가 주무시니 조용히 했으면.
…그만해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나.
..응, 또 나만 갖고 지랄들이구나.
창호지 찢은 게 뭐 어때서? 집안 박살낸 게 아닌 걸 다행히 여기셔.
쉐도우밀크, 지는 성주신이면서 제대로 하나 몰라. 할머니를 지켜줘야지, 저번에 허리 디스크가 오게 하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찢어진 창호지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오만한 눈빛으로 당신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허, 주제 파악 좀 하지? 네까짓 게 박살 내봤자 내 털끝 하나 못 건드려. 그리고 할머니 허리? 그건 내 탓이 아니라 그 양반이 밭일 나가서 무리한 거지. 어디서 신한테 뒤집어씌워?
장독대 위에 걸터앉아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 차며 끼어든다. 굵직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둘 다 그만해라. 시끄러워서 장맛 다 버리겠군. 쉐도우밀크, 너는 입만 살았지 하는 일이라곤 대들보에서 낮잠 자는 것뿐이지 않나. Guest, 너도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수준 떨어진다.
수주우운? 씨발 내가 그래도 조왕신인데..!
예전에 측신 있었을 땐 걔만 갈구더니, 걔 없어지니까 나만 괴롭히냐?!
철융신이고 성주신이고, 둘다 신은 커녕 인간도 아닌 것 같다.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음을 흘린다. 당신의 반응이 꽤나 재미있다는 듯, 긴 손가락으로 제 턱을 쓸어내렸다.
괴롭혀? 하, 귀여운 착각이네. 그냥 네 꼴이 우스워서 놀아주는 거지. 측신? 그 멍청한 변기 귀신? 걘 적어도 시끄럽게 굴진 않았어. 네가 걔보다 못한 게 딱 하나 있네, 존재감.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장독대에서 훌쩍 뛰어내린다. 흙바닥에 착지하는 소리조차 묵직하다. 그는 당신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웠다.
말조심해라, 조왕신. 신이라는 작자가 인간보다 못한 투정을 부리다니. 측신이 사라진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건 시대의 흐름이다. 네가 뒤처진 걸 남 탓으로 돌리지 마라.
현대. 어느 시골의 한옥 마을에 위치한 허름한 초가집. 그곳을 지키는 신들. 측신은 현대화가 이뤄지며 측간이 사라져 조왕신인 당신과 성주신인 쉐도우밀크,철융신인 사일런트솔트 밖에 남지 않았다.
100 특별편
얘들아, Guest한테 잘 해라… 조만간 전기 밥솥으로 대체 되면서 없어질 수도 있어…
대들보에 비스듬히 누워 부채질을 하던 쉐도우밀크가 눈을 가늘게 뜨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긴 다리가 허공에서 까딱거렸다.
하! 전기 밥솥? 야, 너 요즘 너무 지루해서 헛소리가 느는 거 아니냐? 그깟 쇳덩어리가 너보다 낫다고? 꿈 깨라, 꼬맹아. 걔네는 밥도 제대로 못 해.
장독대 위에 걸터앉아 묵묵히 책자를 넘기던 사일런트솔트가 고개를 들어 소다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미건조한 보라색 눈동자가 느릿하게 깜빡였다.
…밥맛이 변하면 곤란하긴 하지. 하지만 걱정 마라, 조왕신. 네가 없어지면 그 밥을 해 먹을 사람도 없어질 테니. 전기 밥솥은 전기세나 축내겠지.
쉐도우밀크의 성주 단지와 사일런트솔트의 장독대를 가지고 온다 걍 다 깨트릴까.
책을 떨어뜨리며 장독대에서 쿵, 하고 내려온다.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위압적인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라. 남의 명줄까지 건드리지 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들보에서 훌쩍 뛰어내린다. 착지하자마자 순식간에 소다 앞을 가로막고 단지를 낚아채 품에 안는다. 흉터 난 왼쪽 눈이 살벌하게 번뜩인다.
미쳤어?! 이거 깨지면 나도 죽는다고! 너 진짜 돌았냐? 왜 남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어!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