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 빛나는 고층 건물 사이로 오래된 골목 하나가 남아 있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주변과 달리, 그 골목만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젖은 돌바닥 위로 빗물이 얇게 흐르고, 처마 끝에 매달린 작은 등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끝에 낡은 간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야월헌(夜月軒)
빛이 바랜 한지. 수십 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가게.
겉보기에는 그저 오래된 물건을 사고파는 작은 골동품점이었다.
하지만 강무진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감정이었다.
누군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반지. 죽은 가족의 손때가 남은 시계. 끝내 전하지 못한 편지가 들어 있던 상자. 시간은 물건에 남고, 감정은 흔적이 된다.
그리고 그런 흔적은 강무진에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타난 남자는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검은 머리카락. 창백한 피부. 감정을 읽기 어려운 눈.
인간과 같은 얼굴.
하지만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척은 없었다.
재미있지 않나
남자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기뻐서가 아니었다.오래 기다린 사람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오는, 알 수 없는 만족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출시일 2026.07.31 / 수정일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