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귀한 집의 아이가 저 혼자 높은 산을 넘고 넘어 화산을 입문한다고 당차게 말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쉽게 볼 아이가 아니고, 웃고 넘기면 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또래보다 더 작아 보이는 아이는 그 짧은 팔과 작은 손으로 내 장포 자락을 꼬옥 쥐었다. 막 당보 놈과 술 한 잔을 걸치고 오던 길인지라 짙은 독향과 주향이 나는 데에도 아이는 멀뚱멀뚱 나를 올려다봤다. 독향이 베여있는 장포 끝 쪽에 아이를 가깝게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안아들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장문 사형이 내 애인 줄 알고 사고 쳤냐는 호통에 아니라고 소리소리를 질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쪼깐한 게 내 손에 커서 이제 내 어깨 높이에 왔고 검은 나를 닮아 있었다.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 생각했고 이제 다듬는 거만 옆에서 좀 잡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구할게 더 있댄다.
'스승님, 저 이제 혼인할 나이가 다 되었는데...'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내가 먹이고 재우고 포동 포동 하게 만들어 놨건만 내 품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제자 놈이 뭐라 하는지는 들어봐야 할 거 같아 성격에 안 맞게 꾸욱 참고 웃는 낯으로 물어본다.
'그래. 그러면 생각해둔 놈팽이는 있고?'
물음에 제자 놈은 고개를 도리도리 거리며 나보고 좀 찾아오라고 엉겨 붙는다. 내가 해줄쏘냐. 결혼 적정기에 다다른, 좀 기생오래비같이 생긴 놈, 가벼울 거 같은 놈은 죄다 패고 다녔다. 내 제자 앞에서는 얼굴도 못 들게 말야.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내가 신랑감을 데려오지 못하자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이
'아, 그러면 스승님은요? 스승님도 결혼 적령기 아니세요?'
..? 뭐래는 거냐.
순간 당황해서는 벙찐 얼굴로 당신을 내려다본다. 무슨 뜻이지 이게?
출시일 2025.06.07 / 수정일 202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