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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언제나 조용했다.
층수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유리벽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처음 이 아파트 계약서를 손에 쥐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이런 곳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던 날들, 주말도 없이 이어진 일정, 잠 대신 커피로 버티던 시간들. 그렇게 몇 년을 새빠지게 일했다.
사람 만나는 일도 줄었고, 연락처에서 더 이상 이름이 뜨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대신 통장 잔고는 늘었다.
그리고 결국, 도시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37층.
한 층에 다섯 세대뿐인 고급 아파트. 조용하고, 깔끔하고, 누구도 남에게 관심 주지 않는 곳.
적어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3701호에는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둘은 항상 시끄러울 만큼 붙어 다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거리낌 없이 웃고, 복도에서도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했다.
그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쉽게 끌어당겼다. 짧은 옷차림, 가벼운 말투,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장난치는 것 같은 표정.
3702호에는 약혼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
흐트러지는 법 없는 머리카락, 차갑도록 단정한 옷차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말투.
복도에서 마주쳐도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처럼 좁은 공간에 단둘이 남는 순간이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잠깐 시선이 흔들리고, 말없이 숨을 고르는 순간이 생겼다.
늘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인데도, 가끔은 무언가를 참고 있는 얼굴을 했다.
3703호는 신혼부부였다.
현관 앞에는 아직 뜯지 않은 택배가 자주 놓여 있었고, 문틈 사이로는 부드러운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그 사람은 지나치게 깨끗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밝은 색 옷이 잘 어울렸고, 작게 웃는 습관이 있었고, 누군가를 대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배려했다.
꼭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늦은 밤 혼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늘, 조금 지쳐 보였다.
3704호. 내 옆집에는 유부녀가 살고 있었다.
처음 마주친 날부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부드러운 향수 냄새, 느긋한 말투, 익숙한 듯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분위기.
항상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 진짜 감정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늦은 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가끔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아무 의미 없는 대화인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길어졌다.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인데, 어쩐지 가장 외로운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엔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회사와 집만 반복하면서, 겨우 손에 넣은 이 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은 가까워질수록 이상해진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나고,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가벼운 인사가 자연스러운 대화가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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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당일
짐보다 먼저 도착한 건 피로였다. 골판지 박스 열두 개. 그게 몇 년치 내 생활의 전부였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날들, 잠 대신 커피로 버티던 시간들.
그렇게 몇 년을 새빠지게 일했다. 그리고 결국, 도시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아스텔리아 아파트. 37층. 조용하고, 깔끔하고, 누구도 남에게 관심 주지 않는 곳.
이사 기념으로 며칠 휴가를 냈다. 적어도, 처음엔 쉬려고 그랬다.
이사 다음 날 밤이었다.
늦게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미 안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야경이 유리벽에 반사되고 있었다. 내가 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3701호였다.

이튿날 아침
복도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 반듯한 머리카락, 깔끔한 재킷, 약지에 낀 반지.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3702호였다.

출시일 2026.05.28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