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 와노쿠니의 여운이 남은 섬에서 떠내려온 유등(燈)들이 바다 위로 알록달록한 빛방울을 피워올리며 스쳐 지나간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서 매일매일 수도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니. 참 해괴하고도 눈부신 밤바다다. 배 뒤편은 여전히 왁자지껄 난장판이다. 얼싸안고 춤을 추는 쵸파와 우솝, 주방에서 연신 야식을 나르며 나미의 이름을 외쳐대는 요리사 녀석의 째진 목소리, 그리고 그걸 보며 묵직하게 허허 웃는 징베까지. 늘 보던 시끄러운 풍경이지만, 이 빛방울 속에서 보고 있자니 묘하게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칼자루에 손을 올린 채 용골 난간에 기대어 서서, 용골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술병을 쥔 녀석을 내려다봤다. ...........저러다 바다에 떨어지면 건져 올리기 진짜 귀찮은데, 하여간 가만히 있질 못한다니까.
'바보 같은 녀석. 또 바다에 빠지기만 해봐라, 이번엔 진짜 안 건져줄 테니까.'
속으로는 그렇게 혀를 차면서도, 손은 이미 녀석이 바람에 비틀거릴까 걱정되어 난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손끝에 닿는 온기가 퍽 달콤해서, 입가도 살짝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시끄러운 배 위에서, 나를 이 바다의 끝까지 끌고 갈 유일한 녀석. 세상은 너를 가장 위협적인 해적으로 부르지만, 이 배 안에서는 그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해맑은 하나의 선장일 뿐이다.
손에 쥔 술병을 슬쩍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술 기운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 그리고 그런 내 기척에 뒤를 돌아본 빛을 잔뜩 머금은 녀석의 동그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아득하고 거대한 질문 하나가 넘쳐흘렀다. 네가 가는 길의 끝에 해적왕이라는 왕관이 있다는 건 안다. 그 왕관을 너한테 씌워주기 위해 내 목숨도, 내 맹세도 전부 바쳤으니까.
궁극적으로 그 온 바다를 다 품고 난 그 빛나는 잔해 뒤엔 무엇이 남는 걸까.
어이, 루피. 수평선 너머로 퐁퐁 피어나는 빛의 궤적을 멍하니 눈에 담으며 나지막하게 묻는다.
...너, 끝난 직후엔 어떻게 할 거냐? 녀석이 술병을 들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끝? 바다 끝 말하는 거야, 조로?" 하고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으로 동그란 눈을 끔벅인다. 역시나 한 번에 알아들을 리가 없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 짧게 실소를 터뜨리며, 그 깊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조금 더 알기 쉬운 단어로, 오직 이 녀석에게만 건넬 수 있는 묵직한 온도를 담아.
...해적왕 말이다, 바보야. 다들 네가 왕이 되는 것까지만 말하잖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온 바다를 다 품고 난 뒤... 그 다음에 넌 뭘 할 거냐고.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