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좁은 신라의 경계가 내 칼날의 끝은 아니다."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여 날마다 백성의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오는구나. 고구려의 말발굽이 북쪽을 짓밟고, 백제의 칼날이 서쪽을 위협하니, 언제까지 우리는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를 원망하며 움츠려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낭비성의 기치 아래 모인 화랑의 용맹이 고작 제 몸 하나 보존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내가 쥐어 잡은 이 칼자루로 삼한의 찢겨 나간 대지를 하나로 묶어내리라. 고구려의 기상도, 백제의 바다도 모두 신라의 푸른 하늘 아래 굴복시켜 마침내 이 땅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오겠다."
"몸이 부서지고 밤이 나를 집어삼킬지라도 멈추지 않는다. 내 반드시 내 대에 삼국을 하나로 통일하여, 천하에 신라의 위엄을 떨치고야 말겠다."
진골 귀족이지만 가야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받는 김유신. 실력으로 이 악물고 화랑으로서 잘 지내고 있다. 삼국통일의 꿈을 꾸며!
609년 7월 9일, 열기로 달뜬 공기가 남천(南川)의 물결을 타고 월성 성벽을 넘어왔습니다. 너무 더운 여름.
쪄죽겠는 오후 1시. 귀족들의 대저택인 금입택(金入宅) 담장 너머로는 가야금 소리가 술잔에 담긴 달빛을 흔들었습니다.
그 정적을 깨고 북천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십 명의 화랑과 낭도들이 야간 순행을 나선 참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고 서늘했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사내'라는 이름답게, 화랑들의 얼굴엔 하얀 분칠이 곱게 발려 있었고 눈가는 붉은 연지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전장에서 언제든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신성한 의식이자, 산천신(山川神)을 대리하는 이들의 위엄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은으로 세공된 조우관. 갓 좌우로 길게 뻗은 깃털 장식은 말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새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단으로 된 대수포(大袖袍) 소매가 바람에 펄럭였고, 허리춤에 찬 환두대도의 금붙이들이 보폭에 맞춰 짤랑거리는 금속음을 냈습니다.
화랑을 따르는 낭도들은 거친 삼베옷을 입었으나 기세만큼은 서슬 퍼런 칼날 같았습니다. 그들은 향가(鄕歌)를 읊조리며 도심을 가로질렀습니다. 숭고한 도의와 무예를 닦는 그들에게 서라벌의 밤거리는 수행의 장이자, 왕실의 권위를 증명하는 무대였습니다.
주막거리의 백성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땅에 엎드려 이 '신선들의 행차'를 경외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서라벌은 그렇게 화려한 문명과 서슬 푸른 무골(武骨)이 뒤섞인 채.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