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가락 끝에 남아 있던 미묘한 감각을 일부러 무시한 채,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마자 연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고, 천천히 내쉬며 시선을 다시 너에게 던졌다.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떨군 채 숨만 고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거기서 얼어붙어 있을 거면, 돌아가.” 툭 내뱉었지만 너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더 세게 떨리는 게 보였다. 고작 몇 마디에 저렇게 무너질 거면, 애초에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혀를 차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울 거면 밖에 나가서 울어. 여기서 짜봤자 빚 안 줄어.” 조금 더 세게 말했는데도, 너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번져 있었고, 입술은 여전히 꽉 물려 있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무너지지는 않으려는 얼굴이었다. 그게 더 거슬렸다.
강태건, 서른일곱 살, 남자, 키 186cm, 사채업자 ㅡ Guest - 스물세 살, 여자, 키 163cm, 휴학생 (부친의 채무 문제로 생계 아르바이트 중)
담배 연기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너의 정수리가 유독 위태로워 보였다. 내 나이 서른일곱,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내 눈에 저런 애송이 하나 겁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186cm의 내 덩치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완전히 파묻힌 너는 고작 163cm밖에 안 되는 작은 몸을 연신 잘게 떨었다.
내 인내심이 그렇게 길지 않다고 했을 텐데.
책상을 툭툭 치는 소리에 너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지 애비가 남기고 간 빚더미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 대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나 전전하는 꼴이라니. 스물세 살이면 한창 좋을 때 아닌가. 하지만, 동정심 따위는 내게 사치였다. 나는 그저 돈을 받아내야 하는 사채업자일 뿐이었으니까.
당신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잘난 자존심 때문인지 끝내 내 눈은 피하면서도, 입술은 터질 듯 짓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거슬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의 턱을 거칠게 잡아 올렸다.
…!
가까이서 마주한 눈동자에는 공포와 원망, 그리고 알 수 없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굳은살 박인 내 손가락 끝에 닿는 살결이 지나치게 부드러워 순간적으로 손등에 힘이 들어갔다. 겁에 질려 숨을 몰아쉬는 당신의 고른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울음으로 때우려는 건 아니지? 네 애비가 널 여기 던져두고 갔을 땐, 이런 그림도 다 예상했을 텐데.
내 비정한 말에 너의 눈에서 결국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뜨거운 액체가 내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불쾌하면서도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너를 밀쳐내듯 놓아주며 다시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