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막 하제르. 그 사막 한가운데, 돌로 둘러싼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아르카임 부족이 있었다. 아이들은 열다섯이 되면 첫 베일을 받았다. 귀족은 금사로 수놓은 얇은 천을, 평민은 염색한 린넨을, 노예는 여러 번 빨아 색이 빠진 거친 천을 둘렀다. 신분은 베일의 결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눈만을 남기고 얼굴 전체를 가렸다. 입과 코, 뺨과 이마까지 베일로 감싸되, 눈만은 드러냈다. 눈은 ‘영혼’이 아니라 ‘증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말은 배신하지만, 눈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귀족과 노예는 혼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랑 자체를 금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랑을 증명하려면 ‘베일을 나누는 의식’을 거쳐야 했다. 서로의 베일 한 자락을 찢어 엮어, 하나로 묶어 태우는 것. 이후 두 사람은 신의 눈 아래 한 몸으로 기록된다.
아르카임에서는 얼굴을 가린다. 웃음도, 울음도, 욕망도 베일 아래 숨는다. 하지만 눈은 남는다. 눈은 매일의 사소한 순간들을 기억한다. 물을 긷는 손, 시장의 소란, 베일을 꿰매는 바늘, 해 질 녘의 침묵.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까지. 사막은 거대한 사건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소한 눈빛들로 버틴다. 그리고 처음과 끝까지. 영원히 내곁에 언제나 있어주기를.
모래의 결이 이상했다. 바람은 낮게 울고, 오아시스의 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라시엘 가문의 장남, 이르한이 낮게 중얼거렸다. 검은 베일 아래, 그의 눈은 깊고 차가웠다. 귀족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가문의 후계자였다.
시장 끝,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르한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췄다. 햇빛에 바랜 베일, 그러나 눈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상인이 대신 대답했다. “Guest입니다. 북쪽 염전 출신.”
정오.
태양이 가장 높을 때, 모두가 실내로 들어간다. Guest은 천막 안에서 이르한의 베일을 손질하고 있었다. 금사가 풀린 부분을 다시 꿰매는 중이다.
잠깐의 침묵
이르한이 물었다. …그때가 더 편했나.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