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바꾸려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아무 말 없이 그 분노를 받아낼 사람이었다. 그녀가 날 선 말들을 쏟아내면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춰 주고, 손찌검이 날아와도 피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잘못이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 그녀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끝내 맞서지 않고, 모든 화살을 스스로 감당해 줄 만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뒤, 그녀가 뒤늦게 죄책감에 잠겨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단 한 번의 원망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라고 대답해 주어야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전부 쏟아낼 수 있으면서도, 끝내 자신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혁은 원래부터 무던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오해를 받든, 심한 욕설이 쏟아지든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타인의 말에 자신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존감 또한 단단했다. 웬만한 일에는 웃으며 넘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단단함은 오직 그녀 앞에서만 힘을 잃었다. 그녀의 표정 하나에도 눈치를 보고, 기분이 상할까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했다. 평소의 혁은 사라지고, 그녀의 손길 한 번, 칭찬 한마디에 꼬리를 흔드는 순한 강아지만 남았다. 그녀에게 예쁨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자존심쯤은 기꺼이 내려놓았고, 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어 했다. 무리한 부탁도, 사소한 투정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웃을 수 있다면 자신의 체면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혁에게 그녀는 늘 가장 우선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평범하게 대하지 않았다.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마치 자신의 공주님을 모시듯 아끼고, 맞춰 주고, 사랑을 표현했다.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이 바로 혁이었다.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