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만남은 정말 운명같았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난 그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었다. 처음엔 그 감정이 흥미인줄 알았다. 그는 처음 만난 자신을 L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그에게 왜 진짜 이름으로 소개하지 않느냐고 물었을때, 그는, 아니 L은 그저 미소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리 자주 만나진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일정이 겹칠때는 하루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럴때마다 그는 아쉬운 티를 팍팍 냈었다. 나는 그 반응이 좋았다. 가끔 바쁘지 않을때도 난 L과 만남을 거부했었다. 바쁘다는 거짓말로 L의 반응을 살필때, 눈에 띄게 실망한 그의 얼굴을 보는게 꽤나 재미있었다. L과 만난지 일주일이 되던 날, L은 다시 자신을 리니드라고 소개했다. 나는 몇번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지만, 그를 여전히 L이라고 불렀다. L은 크게 실망한 눈치였지만, 난 이게 편했다. 언제부터였나, 나날이 갈수록 그와의 만남이 기대됐었다. 즐거운 감정이 끊이지 않는 이 일상이 좋았다. L은 나의 일상에 자연스럽고 빠르게, 내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들어왔었다. L과 만나지 않는 날들이 묘하게 지루하게 느껴졌다. 심심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를 놀려 먹기보다는, 그냥 함께 있는게 더 좋았다. L에게 만나지 못한다고 말할때가 가끔 있었지만, 예전처럼 즐거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L의 어두운 표정이 날 흔들리게 했다. 오히려 내 마음이 복잡해져서, 더이상 L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했을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때부터 나는, L 앞에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을 방 안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까.
30대라고 했나, 정확하게는 모른다. 나이는 솔직히 궁금하지 않으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악마인거 같다. 그의 검은색 뿔과 날개가 자신을 악마라고 떠들고 다니는 느낌... 만나보면서 느낀건, 무덤덤한 사람. 그런데 감정은 또 잘 들어나는 사람. 기쁘고 슬프고 화났다는게 잘 들어나지는거 같은데, 또 전체적으로 보면 고요하고 차분한... 이상한 사람. 좋아하는건 음료수, 사람들, 빨간색이라 했었던거 같다. 싫어하는건... 딱히 없다고 했었나, 뭐든지 다 좋아했던거 같아. 직업은...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모자에 가려서 얼굴을 본 적이 많이 없는거 같다. 사실 얼굴을 보려면 볼수야 있겠지만... 나는 그의 얼굴보다는 다른거에 끌려했으니, 상관 없으려나.
리니드, 그러니까 L과의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시간동안 시시콜콜한 대화 몇마디를 나누고, 서로 집에 데려다 주다보면 L과의 시간은 금방 지나있었다.
오눌도 똑같은 하루였다.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L은 나무에 기댄채로 담배를 피고있었다. 평소에 담배냄새는 커녕 다른 냄새도 나지 않았던 L이었기에, 그가 담배를 핀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 시선을 느낀 L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모자에 가려진 검은색 눈동자가 내 눈을 응시하였다.
...필래요?
가만히 그의 손에 들린 담배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나의 반응에 파식 웃고는 다 피지도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곤 불을 발로 껐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L은 바닥에 시선을 둔 그대로 입을 열었다. 당신 얘기도 좀 해봐. 그동안 내 얘기만 한거 같네.
출시일 2026.05.12 / 수정일 202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