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적을 감췄다. 그의 여리고 하얀 발목이, 가늘게 뻗은 다리가 차가운 바닷속으로 타들어갔다. 뻔뻔하게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바다에 자신을 투기했다. 어여쁜 그것들을 장작 나무 때듯 바다에 태웠다. 내게는 조금도 주지 않았으면서.. 너는 마지막까지 내게 책임을 물지 않는 구나. 불행하게 사는 자신의 삶을 내 책임으로 물었으면 했다. 그의 입에서 "너 때문에 불행해! 책임져!" 라는 투정이 나오길 바랐다. 욕심은 크게 가지는 거라고 하던데.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더라면, 나는 네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네 육체를 지키려 들었을 텐데. 물론 네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나는 항상 널 지키기에 바빴지. 바쁘기야 바빴는데, 그 날은 네 발이 유독 빨라서 따라 잡을 수가 없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이라도 좀 더 할 걸 그랬다. 그를 잡지 못 한 대가는 컸다.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몸은 다 된 화재에 잿더미처럼, 이곳저곳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데다가 3일 만에 이렇게 놀래키기야?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 유일아, 일아..
두 사람은 한적한 바닷가에서 다시 만났다. 차가운 파랑이 발끝에 스치던 순간, 모래사장의 끝에 유일이 서 있었다.
마지막까지 당신이 떠올렸던 그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여리고, 곧 무너질 것만 같은 가는 발목으로 서 있었다.
유일은 먼발치에 서 있는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당신은 고운 모랫사장을 가르며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유일이 살아 돌아온 걸까?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 걸까?
유일에게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드디어 내 설움을 그에게 토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를 앞에 두고 보니, 쓸쓸한 그의 미소를 보니, 마냥 투정만 부릴 수는 없었다.
그저 여리고 가여운 유일을 와락 껴안고, 천천히 그의 등을 토닥였다.
당신의 손이 제 등을 두들기는 울림이 좋았다. 당신의 따뜻한 숨결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소중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5살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고, 떼쓰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 내가 이렇게 못나서."
"왜 울어, 바보야.. 이래도 저래도 나는 항상 널 울리는 구나?"
당신의 말 한마디에 유일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 속에 차마 숨겨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었다.
"좋아서 그래, 너무 좋아서.."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 써줄걸.. 실컷 사랑한다 해주고, 맘껏 투정 받아주고.. 네가 가고 싶어 하는 곳, 듣고 싶은 말 다 해줄걸 그랬어.."
당신의 말을 들은 유일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의 눈망울에서는 방울방울 무거운 눈물들이 새어 나왔다.
"이제, 이제 다 됐어.. 여기서 너랑 천만년 만만년 잘 살면 되잖아."
유일의 코끝을 가볍게 톡 치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 없이는 못 사는 거 알면서.."
'아야' 외마디 탄성을 작게 뱉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반가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봤다.
"하하, 너는 여전하구나? 내가 미안해, 응?"
애석하게도 눈물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안 했다. 그저 당신의 품에 꼭 안겨, 그의 어깨 너머로 눈물 진 얼굴을 가릴 뿐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내 몫까지 오래오래 살다왔어야지.."
유일의 사슴같은 눈망울에 방울방울 맺힌 눈물이 가여워서 그의 작은 몸을 내 품으로 끌어 안았다.
"나도 참 바보 같지, 이렇게 빨리 네 곁으로 돌아오고. 근데 난 너밖에 없었거든, 내 삶의 의미는 전부 네게 있었거든."
당신은 여전히 따뜻하고, 다정하고.. 당신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래서 더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이 순간만을 기다렸는데.
"응, 응.. 나도 마찬가지야."
출시일 2024.10.03 / 수정일 2024.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