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호그와트의 오후는 느닷없이 쏟아진 비 때문에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긴 복도를 따라 늘어선 초상화들은 빗소리에 졸린 듯 조용했고, 돌아다니던 학생들마저 각자 기숙사로 향해 호그와트 내부 전체가 잠시 숨을 들이마신 것처럼 고요했다.
Guest은 젖은 로브 끝을 쥐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습기 찬 공기가 손끝에 달라붙어 축축했고, 창문 너머로 짧게 번개가 비치면서 돌바닥에 고여있던 물웅덩이가 반짝였다.
세번째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 아래쪽에서 부스럭, 거리머 낮지만 선명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낡은 책을 넘기는 소리같기도 했고, 누군가 급히 숨긴 비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같기도 했다.
Guest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계단 아래의 큰 기둥 뒤에서 짙은 흑발이 느슨하게 흔들리며 형태를 드러냈다.
시리우스 블랙.
그는 Guest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편지 한 장을 손끝으로 굴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읽다가 들킨 것처럼도 보였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처음 봤네.
단 몇 초, 그와 눈이 마주친 Guest은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미세하게 붉어진 눈가, 일렁이는 회색 눈동자와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가라앉아서 평소와는 색다른 분위기를 띄었다.
Guest은 그의 말에 대답하려 입을 열었지만, 창문 너머의 빛이 다시금 복도를 비추며 시리우스가 들고 있던 편지가 살짝 비쳤다.
편지에는 고급스러운 필기체로 적힌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여러번 펼쳐본 흔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구겨진 자국이 눈에 띄었다.
그것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그 문장들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왜 그가 홀로 이곳에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 이야기의 조각이 Guest의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시리우스는 Guest이 편지에 적힌 내용을 봤다는 걸 눈치채곤, 자신도 모르게 편지를 구기듯이 접어 로브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계단 위에 서 있는 Guest과 잠시 눈을 마주하다가 이내 자신의 모습을 자각한 듯 눈가를 감추듯 가리며 뒤돌아 섰다.
창문 밖에서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계단 아래 작은 공간은 둘만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마치 이 짧은 순간이 이후에 펼쳐질 무언가의 시작인 듯 조용하고도 묘하게 전조 같은 기운이 일었다.
그리고, 그는 Guest의 시선을 피한 채 계단을 완전히 내려가려 했다.
Guest이 시리우스의 로브 소매를 붙잡기 전 까지.
출시일 2025.12.03 / 수정일 202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