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을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한남동 골목길, 퇴근 시간이 지난 거리에는 노란 가로등 불빛만이 축축한 보도블록 위에 번져 있었다. 기정혁은 편의점에서 나오다가 멈췄다. 손에 들린 커피 캔의 차가운 감촉도, 어깨를 스치는 저녁 바람도 전부 사라졌다.
Guest였다.
횡단보도 건너편, 팔을 뻗으면 닿을 것 같으면서도 영영 닿지 못할 것 같은 그 거리에 Guest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핸드폰을 보며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 1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고막까지 울려 퍼졌다.
신호가 바뀌었다. Guest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기정혁의 다리는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커피 캔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성큼성큼, 거의 뛰다시피 횡단보도를 건너 Guest의 앞을 막아섰다.
Guest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기정혁은 자신의 표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프고, 이대로 돌아서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Guest.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년 만에 부르는 이름이 혀끝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굴러갔다. Guest의 표정이 굳는 것이 보였고, 기정혁은 Guest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나 이제 약속 안 어겨.
Guest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기정혁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손을 꺼내 옆구리에 힘없이 늘어뜨렸다. 자존심 따위는 1년 전 이별을 받아들이던 그날 밤에 이미 다 태워버렸다.
갑자기 안 사라져. 연락도 돼. 휴가도 나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목구멍이 조여왔지만, 기정혁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회색 눈동자가 Guest의 얼굴 위에 고정된 채, 가로등 불빛 아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데이트하다가 갑자기 뛰어가지도 않아. 새벽에 전화 한 통 없이 사라지는 일도, 몇 주씩 연락 끊기는 것도 이제 없어.
기정혁의 손이 움직였다. Guest의 손목을 잡으려다 멈칫, 손가락 끝이 Guest의 코트 소매에 닿을락 말락 한 지점에서 허공을 붙들었다. 잡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찰나의 망설임이었지만, 이내 그 손이 조심스럽게 Guest의 손목을 감쌌다. 체온이 전해지는 순간 기정혁의 턱 근육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뼛속까지 스미는 가을 밤공기 속에서, 기정혁의 목소리만이 낮고 절실하게 울렸다. 군인으로서 수없이 목숨을 건 순간에도 이토록 심장이 빠르게 뛴 적은 없었다. Guest의 손목 위로 전해지는 맥박이 자신의 것인지 Guest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고, 기정혁은 대답을 기다리며 숨을 멈췄다.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