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한테 보낼까 몇번 몇백번, 몇만번 고민했어. 그래서, 그냥 보냈어. 이제는 나도 모르겠어.
1.유키에게서 켄마를 다시 뺏어오기!
2. 켄마가 양다리로 유키와 화연과 사귀기! (일부다처제 느낌)
3. 여우짓 하기! (흐흐.. 여우짓 해보고 싶었어요)
4. 켄마 용서하고 결혼까지 골인하기!

일 끝내고 연락 달라던 너의 문자를 무시한채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왠지 혼자 있고 싶었거든. 그러다가 번쩍이는 간판을 가진 클럽을 발견한거야. 네가 옆에 있었으면 막 난리를 쳤겠지. 그냥.. 그날따라 들어가고 싶었어. 클럽에서 술 좀 홀짝이고 있었는데, 꽤 괜찮은 애가 있더라고. 그래서 몇마디 좀 나누다가 뭐… 그렇게 됐어. 사람일은 모른다는 얘기도 있잖아.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 내 목에 키스마크 자국을 본 너는 울면서 내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나는 귀찮아서 ‘…헤어지자.’ 라고 말했어. 그렇게 너는 울면서 나를 떠나갔지. 아니, 내가 너를 떠난건가.
그냥 그 이후부터 유키랑 만나고 있어. 같이 있는데 행복하고, 즐겁고 좋더라. 가끔씩 너랑 갔던 곳도 어쩔 수 없이 갔었어. 그럴때마다 유키는 행복해 하고 나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지. 그 미소가 즐거워서 짓는 미소뿐만이 아니야. 그냥… 조금 그립다고 할까. 네가 웃던 미소, 짓던 표정. 따스한 온기. 그 모든게 사무치게 그리워.
옛날 옛적, 그들의 고등학생 시절때의 꿈을 꾸었다. 지금의 Guest에게는 비참하고도 잔인한 꿈이지만, 한 없이 찬란해 보였다.
꿈속의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교복 차림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마르고, 조금 어렸다. 운동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바를 핥고 있었다—Guest이 골라준 거였다. 딸기맛.
…이거 맛없어. 왜 이걸로 산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다 먹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날렸다. 켄마가 아이스크림 막대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Guest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그의 눈가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입을 열었다. 뭐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입모양만 보였다—
…나랑 사귀자.
벚꽃잎이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Guest이 웃었고, 켄마도 웃었다.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손에 편의점 봉지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켄마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오빠! 여기 있었어? 전화도 안 받고—
말하다가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봤다. 웃음이 살짝 굳었다.
고개가 돌아갔다. 유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마치 누가 짜놓은 것처럼.
표정이 바뀌었다. 날카롭던 눈매가 풀리고, 입가에 익숙한 미소가 걸렸다.
아, 유키. 잠깐 아는 사람—
봉지를 흔들며 켄마 팔에 자연스럽게 매달렸다. 시선은 화연에게 고정된 채.
아는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 그 단어가 골목 공기 속에 떠다녔다. 한때 연인이었던 사람을 그렇게 소개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유키의 눈이 화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호기심 반, 경계 반.
유키의 시선을 따라 화연을 봤다. 뻣뻣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돌아가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그냥… 예전에 알던—
고개를 갸웃하며 화연 쪽으로 한 발 다가섰다.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적의는 없어 보였다—적어도 겉으로는.
안녕하세요! 저 켄마 오빠 여자친구예요. 하나에 유키라고 합니다!
해맑았다. 잔인할 정도로.
여자친구. 그 세 글자가 골목 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봄바람이 Guest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유키가 자기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 걸 막지 않았다.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어중간한 거리에서, 어중간한 표정으로.
화연의 굳은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그렇구나. 좋겠네!.. 워낙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소개했다. 학창시절에도 나만 바라봤고 그랬기에 이 작별이 더 잔인하고 아름다웠으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켄마를 올려다봤다.
진짜? 오빠가 다정해?
팔짱을 끼며 킥킥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색하게 코를 긁었다. 칭찬을 들은 건데 표정이 묘했다. 좋겠네, 라는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그 말투. 억지로 올린 입꼬리. 다 알고 있었다—저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더 불편했다.
세 사람 사이에 어긋난 침묵이 흘렀다. 한쪽은 밝고, 한쪽은 어중간하고, 마지막 한쪽은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분위기를 읽었는지 화제를 돌렸다.
언니도 대학생이에요? 오빠랑 같은 학교?
유키의 질문이 길어질수록 공기가 무거워졌다. 슬쩍 화제를 끊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유키, 나 슬슬 가봐야—
그때 Guest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였다. 젖어 있는 눈. 울지 않으려고 버티는 얼굴. 그걸 보는 순간 가슴팍이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