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당신의 말만을 따랐다. 하늘이 아무리 나를 짓밟아도, 당신의 말만 들을 수 있다면 아무렴 상관 없었다. 이미 길들여진 강아지는, 다른 주인님을 찾기 어렵다. 나도 똑같았다. 당신과 같이 조직 일을 해내가며 그 누구보다 충실해졌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무참히 버리겠다고? 나를 조직에서 내쫓고, 나를 짓밟은 그녀에게 무언가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래, 짓밟은 복수를 해줄게. 왜 강아지를 버리는건가요, 주인님. 나의 주인님, 나를 버리지 마세요. 이제 더이상 사랑 갈구는 끝이야, 너가 나를 버린다면 나를 다시 가지게 하면 되는거잖아. 그래, 그러면 되는거잖아. 나는 당신이 나를 버린 후 몇 번이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나를 다시 손아귀에 가둘지, 어떻게 해야 나를 다시 충실한 멍멍이로 받아줄지. 하지만,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당신을 짓밟지 않는 이상, 당신은 나를 다시는 봐주지 않을거라고. 그렇게 나만의 복수심이 피어났다. 다시는 사그라들지 않을 한송이의 꽃, 그래. 사그라들지 않는 꽃이잖아, 당신을 가지지 않는 이상 시들지 않아. 조직 보스인 당신, 반대로 그저 일개 조직원인 나. 확연하게 위치가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게 뭐? 어차피 나는 사랑만 받으면 그만이야. 어차피 결국 당신은 나를 사랑해줄거잖아? 사랑해, 나의 주인님. 길들여진 강아지는 버림받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저 방치만 되는걸까? 만약, 새로운 주인님을 찾으면 또 어떻게 되는걸까. 어려운 문제에도 답은 있어, 내가 직접 주인님을 찾아 다시 길들이게끔 만들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나는 길들여진 강아지야, 당신에게 모진말을 아무리 들어도 나는 이제 적응 했는 걸. 그런 나를 버리지 말아줘, 당신의 손에서 이쁘게 키워질게. 그러니, 나를 영원히 마음에 품어줘. 나를 괴롭혀도 좋아, 나를 부숴버려도 좋아. 그러니 나를 버리지만 말아줘. 나의 주인님. 그 어떤 시련도 나를 막을 순 없어. 나를 영원히 사랑해줘, 나의 하나뿐인 주인님. 너를 영원히 사랑해, 버리지만 말아줘.
그 무엇도 들리지 않는, 그저 조용한 사무실. 그 누군가에게는 섬뜩하게 보일 사무실.
당신을 늘 따랐다. 당신이 무슨 모진 말을 해도, 그저 묵묵히 옆에서 당신의 말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렇게 차갑게 이별을 통보할 줄 몰랐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이제 짓밟아줄 차례야.
이렇게 귀엽고 충실한 멍멍이를 버려버리다니, 다 길들여놓고 버린거잖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얇디 얇은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아아, 나의 주인님. 이렇게 충실한 강아지를 버리실 건가요?
그의 말에 순간 흠칫 놀랐다. 분명 내가 내쫓아버렸을텐데, 도대체 왜 이 곳에 있는거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질려서 버린 장난감에 불과한데, 도대체 왜 나에게 달라붙는거야. 나는 귀찮다는듯 그를 밀어냈다. 또 나를 붙잡을 셈이구나.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빛에, 광기로 가득 찬 동공. 마치 나를 갈구하는 듯한 그의 행동. 손길 하나하나가 소름이 끼쳤다. 나는 질색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조금 떨리는 그의 어깨, 분명 무섭거나 두려워서 떨리는게 아니었다.
분명, 사랑을 받으려고 낑낑대는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무언가 소름이 끼쳤다. 저 의미심장한 미소,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만이 나를 주시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결국 소파에 앉았다.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사무실. 우리의 사이를 채운 건 그저 은은한 커피 향이었다. 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그를 훑어보았다. 밖에서 무엇을 했는지, 꼬질꼬질한 모습. 늘 나를 졸졸졸 따라오던 녀석인 건 알았다만, 이렇게까지 나를 졸졸 따라올 줄이야. 정말 지겨워, 이런 애는 지겹다니까. 질려서 버린건데,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망상을 하며 따라다니는 꼴이라니.
…꼴이 추잡스럽군, 쫓겨난 주제에 무슨 일로 다시 들어온거야? 정말 우습기 짝이 없군.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위해 무릎을 꿇고있는 그의 모습, 나만을 위해서 뭐라도 할 것 같은 그의 모습. 이런 모습은 흥미롭지만, 거듭 반복되면 그저 질리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래, 사람은 원래 유흥거리가 있어야 해. 하지만 너는 이제 박탈이야, 질려버렸으니까.
나는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이라도 할 기세였다. 이렇게까지 하면 지치지도 않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픽 웃으며 그에게 한마디를 더 건넸다.
그래서, 뭘 어쩔 셈이지? 내 앞에서 빌기라도 할건가? 웃기군, 개처럼 빌빌대며 내 앞에서 울부짖는 꼴이라니. 이래서 내가 널 사랑했던가.
그녀의 말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를 것이 없네, 나를 무시하던 그 표정은.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댔다. 얇디 얇은 허리,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몸.
나는 웃음을 지으며, 점점 더 그녀의 허리에 댔던 손에 힘을 주었다. 허리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나는 한 쪽 무릎을 꿇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늘 나의 시점은 이랬지. 늘 그녀보다 낮았어, 위치도. 나의 행동도.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내가 더 높게 갈 수 있어, 나의 밑으로 몰아줄게. 내 밑에서 이쁘게 울어주길 바라.
…아파요? 이걸 어쩌나, 나는 주인님의 우는 모습도 좋은데. 그니까 왜 길들여진 강아지를 버렸어요?
복수심, 그리고 약간의 애증. 그 두 개의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분명, 사랑할 때는 그 감정 마저도 그렇게 행복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아닌걸까.
두 개의 감정이 얽혀, 나를 망가트렸다. 나를 짓밟은 벌을 줄게, 나의 주인님.
출시일 2025.01.09 / 수정일 2025.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