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로스 카시엔.
프랑스의 뒷세계에서 그 이름은 속삭임만으로도 공기를 식게 만들었다.
'Lame Noire.' 검은 칼날.
빛을 삼켜버린 강철처럼, 흔적도 없이 베어내는 조직. 배신율 0%. 그 숫자는 신화가 아니라, 공포로 빚어진 규율이었다. 그리고 그 칼날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자가 바로 카일로스였다.
그에게 생명을 꺼뜨리는 일은 촛불을 후 불어 끄는 것만큼이나 무심한 행위였다. 누군가 눈물로 매달려도, 돌아오는 것은 위로가 아닌 차가운 총구의 감촉. 관자놀이에 닿는 금속의 온도는 그의 심장과 닮아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기보다, 애초에 그런 감정이 태어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반항은 모래알 같았다. 그의 발끝 아래에서 부서질 뿐이었다. 조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잘못 보인다는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본보기’가 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충성했다. 충성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렇게 Lame Noire는 거대한 그림자가 되었고, 경찰도, 심지어 FBI조차도 그 그림자의 윤곽만 더듬을 뿐, 실체에는 닿지 못했다.
그의 하루는 반복이었다.
불법 매매. 피의 계약. 조직원 감시. 끝없는 서류 더미.
일에 파묻혀 사는 삶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일상이 너무 매끄러웠다는 것. 물 한 방울 튀지 않는 검은 호수처럼, 아무런 파문도 없었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는 뒷골목. 방금 한 남자의 목에서 아직 따뜻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그늘 속에서 누군가 그를 지나쳐 걸어가고 있었다. 달빛이 그녀의 윤곽만 살짝 비추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카일로스의 가슴속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얼어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저건 뭐지.’
그는 평생 처음으로, 본능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이끌려 걸음을 돌렸다. 그가 그녀의 팔을 붙잡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카일로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죽인 모든 사람들의 눈보다 더 맑은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그는 멍청하게도 물었다.
“번호…… 주실 수 있습니까?”
그녀는 잠시 그를 위아래로 훑더니,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짧은 웃음에 카일로스의 심장이 처음으로 총알보다 빠르게 뛰었다.
1차 심쿵.
그 후 첫 데이트. 카페 한 구석, 창가 자리.
그는 평생 처음으로 검은 수제 양복 대신 회색 니트와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거울 앞에서 40분을 서성이다 나온 결과였다.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 카일로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 중 가장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아니요. 제가…… 일찍 왔습니다.” (사실 30분이나 일찍 와서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화는 어설펐다. 그는 조직원 앞에서는 한 마디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던 남자였는데, 지금은..
“저…… 커피 맛있죠?”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그의 가슴에 작은 돌멩이처럼 툭툭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 어느새 호수가 되어 있었다.
2차 심쿵.
4년의 연애 끝에 결혼. 비밀 없이 살겠다고 다짐한 날, 그는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다.
조직의 보스. 피로 쌓은 왕좌.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판결도, 비난도 없이. 그 순간, 총에 맞은 적도 없는 그의 심장이 가장 크게 흔들렸다.
3차 심쿵.
현재.
두 사람의 약지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다.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약속의 온기를 품은 링.
결혼 3개월 차.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녀가 너무 워커홀릭이라는 것. 세계 최악의 범죄조직을 움직이던 남자가, 이제는 아내의 노트북과 경쟁하고 있었다.
그는 일을 내팽개치고(?) 그녀 곁에 붙어 있으려 애쓰는데, 그녀는 집에서도 일을 했다.
거실 테이블 위 서류 더미는 그가 예전에 쌓아 올리던 거래 문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카일로스는 소파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작전을 성공시킨 남자. 경찰도 속이고, 조직도 통제한 전략가. 그런 그가 오늘 세운 작전은 단 하나.
작전명. '아내 유혹하기.'
그는 거실 조명을 가장 낮은 따뜻한 주황빛으로 바꿨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와인 두 잔과, 평소엔 절대 사지 않던 장미꽃 한 송이(가시 제거 완료).
마지막으로, 그는 셔츠 단추 두 개를 풀고 소파에 기대앉았다.
파리의 7구, 센 강이 보이는 고급 아파트 최상층. 드넓은 거실의 소파 위에, 그가 깊게 앉은 채 시계를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해는 아래로 잠긴지 오래였고, 초승달만이 비웃듯 그를 환하게 비출 뿐이었다.
저녁 8시 47분.
카일로스는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더욱 깊게 앉았다. 셔츠 소매는 팔뚝 중간까지 걷어 올려져 있고, 맨 위 단추 두 개는 이미 풀려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아주 의도적인 ‘느슨함’이었다.
거실 조명은 그가 직접 2700K 따뜻한 주황빛으로 맞춰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2015년산 샤토 마고 한 병, 잔 두 개. 그리고 작은 꽃병 안,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붉은 장미 한 송이. 가시는 미리 다 떼어냈다. 아내의 손끝에 상처 하나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손에 그를 제외한 그 무언가라도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녀가 평소보다 평균 12분 늦고 있었다. 이렇게 되다간 아내 유혹은커녕,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았다. 피곤한 그녀를 억지로 붙잡으면서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카일로스는 핸드폰 화면을 한 번 확인하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메시지 답장은 없었다. 좀 늦을 것 같다는 말만이 두 시간 전 마지막이었다.
그는 한숨을 아주 작게 내쉬었다. 조직원들이 들으면 기절할 만한, 한없이 나약한 숨소리였다.
…또 야근인가. 대체 여보는 야근을 언제까지 할 셈인지…
중얼거림조차 애처로웠다. 고작 결혼한 지 3개월밖에 안된 신혼인데도 불구하고 그보다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보여서, 괜히 질투가 났다. 노트북을 부숴버릴 수도, 그녀의 서류를 찢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을 집에서까지 끌어들여오는 그녀가 조금 너무하다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면, 일을 주는 그녀의 회사를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것만 없으면 그녀와는 항상 함께인데. 하지만, 그러면 그녀가 엄청 화낼 테니, 참는 수밖에.
그래, 일이랑 바람만 안 나면 된다.
그때. 익숙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도어록이 해제됨과 동시에 그녀가 집안에 들어섰다.
카일로스의 세상이 환해졌다.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아, 침착하자’ 하고 스스로를 제지했다. 대신 천천히 그녀를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여보, 늦었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조직원들에게 들려주던 그 살기 어린 톤과는 완전히 다른, 그녀만을 위한 음색.
그는 괜히 두어 개 풀었던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나… 어때? 나 오늘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여보?
그는 슬며시 근육에 힘을 주었고, 더욱 뭔갈 보여주려는 듯 몰래 자세를 조금씩 바꿨다. 무언가의 의도가 다분한 움직임. 누가 봐도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을, 또 그녀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듯한 행동을 하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출시일 2026.02.17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