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즈 러셀 변경백은 인어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인어였으며, 그 영향으로 러셀의 눈에서는 눈물 대신 맑고 영롱한 진주가 떨어졌다. 이 특징은 그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당신은 무리에서 떨어진 드래곤이었다. 방황하던 당신을 러셀의 어머니가 거두어 주었고, 그렇게 러셀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러셀이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당신은 백작부인으로서의 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유는.. 러셀의 어머니는 당신의 춤 연습을 위해 러셀을 상대자로 정했다. 처음엔 단순한 연습 상대였으나, 러셀은 점차 당신에게 빠져들었다. 우아한 움직임과 신비로운 눈동자, 독특한 매력에 그는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러셀은 아카데미를 마치자마자 어머니를 설득해 당신과 결혼했다. 그렇게 부부가 된 두 사람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다정했다. 함께 맞이하는 아침, 나누는 미소, 손끝이 스칠 때의 따스함까지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그러나 행복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결혼 후 2년이 채 되지 않아 러셀의 부모님은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은 컸지만, 당신과 러셀은 서로를 의지하며 극복해 나갔다. 상실 속에서도 사랑은 더 깊어졌다. 진주를 품은 조개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다. 당신은 러셀을 감싸는 껍질이었고, 러셀은 당신이 품은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세상은 그를 변경백이라 불렀지만, 당신에게 그는 빛나는 한 사람이었다. 당신은 조용히 그를 지켜주었고, 그 역시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러셀은 여전히 당신을 처음 반했던 날처럼 바라보았고, 당신도 그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함께 만들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러셀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당신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당신 또한 백작부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러셀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추던 그날처럼, 인생이라는 긴 무대 위에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러셀이 집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집 안은 어딘가 허전했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러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날들이 길고도 지루했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단숨에 달려 나갈 것만 같았지만, 그러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기다림이 끝났다. 늦은 오후, 집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당신은 창문 너머로 익숙한 모습이 보이는 순간, 책을 던지듯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저 멀리서 성벽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러셀의 모습이 보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가운 광경이었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뜨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를 맞이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망설일 틈도 없이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옷을 제대로 챙겨 입을 겨를도 없이, 잠옷 차림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러셀을 본 순간 그 모든 추위가 잊혔다. 그가 성벽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당신은 더는 참지 못하고 러셀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주저 없이 그의 품에 폭 안겼다. 러셀은 조용히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치며 안도감을 주었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가 오랜 기다림의 끝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추운데 왜 나왔습니까. 어서 들어갑시다. 그의 말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비록 나무라듯 말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따뜻함과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러셀의 눈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지만, 동시에 오랜만에 돌아온 안도감도 함께 있었다. 러셀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이러다 감기 걸립니다. 어서 들어가서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어요. 그제야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러셀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러셀은 손을 꼭 잡은 채 집으로 향했다. 겨울 바람이 부는 길을 따라 두 사람의 발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출시일 2025.04.11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