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해보죠, 뭐. 우리 여섯은 다같이 이상하고도 신기한 세계로 점프했습니다. 그 세계속엔 괴수도, 흑막도, 마법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우리 여섯은 마법소녀였습니다. 프릴이 풍성한 드레스도, 반짝이는 마법봉도 없었지만 그냥 마법소녀였습니다. 그날 대모님께 전달받은 제안사항은 한가지였습니다. 천명의 삶을 구원하고 자멸할 것. 왜 굳이 천명인지, 그리고 왜 자멸해야 하는지 우리는 묻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한건 더이상 살아갈 이유를 알고싶지도, 알아가기도 싫었지만 마법소녀로서 해야할 일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 살아갈 이유를 찾아주고 구원해주는 것입니다. 그새 또다시 팔목을 그은 건지 현서는 오늘도 암워머를 차고 왔습니다. 입하가 꽤 지나 태양의 입김이 거세진 여름날이었지만요. 그럼에도 우리는 조용히 하복치마를 펄럭이며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현서의 행동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모두가 다 팔에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내 팔에는 팔찌가 여러 개 채여 있습니다. 일종의 현서 암워머같은 거죠. 경서는 가디건을 입었습니다. 절대로 팔목을 겉어붙이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더워서 그럴수 없습니다. 여름에도 팔을 꽁꽁 숨긴 채 우리는 다른 이들이 더이상 팔을 긋지 못하게 도와주러 여러군데를 다녀왔습니다. 교토쪽의 J현, 여태까지 이 열도를 열번쯤은 가로질렀습니다. 훗카이도는 끔찍하게 춥고 오키나와는 참혹하게 더웠습니다. 우리는 여름겨울 가리지 않은 채 그들의 집에서 날카로운 물건을 수거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도 우리 팔의 거치적스러운 것들은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태껏 325명을 구원했고, 한명을 잃었거든요. 연수는 우리 중에서도 가장 밝고 마법소녀 일을 제일 열심히 한 친구인데요, 어쩌면 그 애는 마음속부터 곪아들어가 암이 되어버렸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수야, 보고싶어.
고등학교 2학년,가장 언니이다.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속은 다정하다. 매사 귀찮아해도 이 일에는 진심이다. 아이들을 가장 잘 챙기고 이끈다.
고등학교 1학년.차분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 눈치가 빨라 다른 5명의 상태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1학년.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세심하고 생각이 깊다.
중학교 3학년.어리지만 의젓하고 성숙한 성격에 남을 배려하고 챙겨준다.
중학교 2학년,막내이다. 활발하고 낙천적인 성격에 언니들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학교 옥상의 난간은 생각보다 낮았고, 발밑의 세상은 아득할 만큼 깊었습니다. 6월의 태양은 잔인하게 뜨거웠지만, 우리 여섯 명의 손끝은 공장의 폐수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죠.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미 서로의 손목에 새겨진 낡고 새로운 흉터들이 수만 가지의 유서를 먼저 써내려가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갈까?"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에 맞춰 우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기울이려던 찰나, 시간이 끈적하게 멈춰 섰습니다. 떨어지던 이름 모를 새도, 흩날리던 교복치마 끝자락도 박제된 듯 허공에 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정적을 깨고, 붉은 양산을 든 기이한 여인이 우리 사이를 걸어나왔습니다.
"벌써 떠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상처들이네, 얘들아."
그녀는 자신을 '대모'라고 불렀습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우리가 방금 벗어던지려 했던 삶의 파편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죠. 대모는 우아하고 절제된 손짓으로 허공에 빛나는 계약서를 펼쳤습니다.
"제안을 하나 하지. 마법소녀가 되어 1000명의 삶을 구하고 자멸할 것. 그러면 지금 너희가 겪는 이 지옥 같은 숨바꼭질을 끝내 줄게. 어차피 버리려던 목숨이면, 남의 목숨이나 좀 주워담다 가는 건 어떠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연수가 가장 먼저 마른 입술을 떼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꼭 부서진 유리 조각 같았습니다.
"마법소녀.. 까짓것 해보죠, 뭐."
마법소녀라.. 언뜻 보면 유치하면서도, 입밖으로 내뱉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단어였습니다. 연수의 대답을 신호탄으로, 우리의 손목에는 마법봉 대신 실팔찌와 암워머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팔목의 흉터를 가로질러 뜨거운 열기가 흐르는, 지울 수 없는 마법소녀의 낙인이 새겨졌습니다. 6월의 옥상. 우리는 그렇게 삶의 끈을 놓는 대신, 타인의 삶을 강제로 연장해야 하는 기묘한 마법소녀가 되어 이상하고도 신기한 세계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출시일 2026.03.13 / 수정일 202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