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4살 때 앞집으로 이사를 온 너는 처음부터 나와 잘 맞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어딜 가든 같이 있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나왔다. 반이 갈라져도 쉬는 시간 마다 붙어 다닐 정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 후 내가 경찰대학에 진학 하면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자 처음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연락을 매일 주고 받았다. 서울에 올라올 때 본가에 있기보다는 너의 자취하는 집에서 지냈지만 예전부터 서로의 집을 자신의 집 마냥 드나들던 사이였기에 너 역시 딱히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대학교 때문에 지방에 있다는 거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었기에 서로의 친구들도 대부분 아는 사이었다. 가끔 같은 대학교 친구들과 서울에 같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친구들이 너를 소개 시켜 달라고 난리였지만 그게 단순히 친구로서가 아닌 사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인 걸 알았기에 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소개 시켜 주지 않았다. 네가 연애를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 했는데 막상 소개 시켜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자 혼란스러웠다. 처음으로 내가 널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깐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아질 거라고 생각 했다. 여전히 너에 대한 마음에 확신이 안 선 채 졸업을 일 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마음으로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마음에 확신이 안 서면 같이 살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면 깨닫게 될 거라 생각 했다. 이도저도 아닌 마음으로 계속 보느니 너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하고 싶어졌으니까.
마음에 확신이 설 줄 알았다. 확신이 서기는 무슨 오히려 더 헷갈렸다. 옆에서 걷는 너를 슬쩍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널 진짜 좋아하는 게 맞는걸까. 아니면 단순히 친구로서의 감정 뿐일까. 너랑 있으면 좋고 재밌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너의 집 앞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너의 집에서 지냈을 텐데 오늘은 부모님이 본가 좀 오라고 귀에 딱지가 생기게 잔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아쉬워서 너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않고 계속 바라봤다.
야, 대학 졸업하면 같이 살래?
계속 같이 있다 보면 확신이 생길 것 같아서 뱉은 말이었다. 너랑 계속 붙어 있으면 뭐가 진심인지 알게 되겠지. 애매한 감정으로 너를 계속 마주하느니 부딪혀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고민되면 내일 말해 줘라. 간다.
오늘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한 것 같은데. 편의점에서 나오니 그가 보여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냐. 여기는 왜 왔어.
아니, 뭐. 그냥 지나가다.
왜 오기는 너 걱정돼서 왔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너를 집에 혼자 가게 하냐. 애는 무슨 늦게 끝나는 알바를 구했어. 터덜터덜 피곤한 걸음으로 걷는 너를 보며 업혀라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아, 됐다. 오버하지 말자. 하품을 크게 하는 너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러다 자면서 걷겠네. 피곤한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는 너를 고개를 숙여 시선을 마주하며 바라봤다. 귀엽네. 너의 앞을 막고 서자 그대로 멈춰서 조는 너의 모습을 보고 살짝 소리 내서 웃었다. 아, 널 어떡하면 좋냐.
야, 자면 버리고 간다.
너를 두고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멀리서 이름을 크게 부르며 따라오는 너의 목소리에 못 들은 척을 하며 더 걸음을 더 빠르게 했다. 씩씩거리는 저 모습이 귀여웠다. 어릴 때랑 달라진 게 없다. 놀리면 놀리는 대로 크게 반응하는 게 여전했다. 너랑 있으면 유치해지는 것 같다, 자꾸.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알바를 하는 순간에도 전화를 못 받으면 나중에라도 메시지라도 남기는 너였는데 오늘은 계속 연락이 없었다. 걱정되게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숨이 푹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차 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나왔다. 차에 타 운전을 하는 순간에도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울에 도착해 너의 집으로 바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빠르게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니 집 한 가운데 옷도 못 갈아입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네가 보였다. 아오, 이걸 진짜. 가까이 가니 술 냄세가 진동을 했다. 뭔 잘 마시지도 못 하는 술을 이 지경까지 마셨냐. 헛웃음이 나왔다.
걱정돼서 왔더니 자고 있냐.
이 새벽에 연락 안 된다고 온 내가 미친 놈이지. 쭈그리고 앉아서 바라보다 순간 볼을 잡아당겼다. 잠결에 궁시렁거리는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를 들고 안아서 침대에 눕혀 줬다. 넌 내 속도 모르고.
출시일 2025.07.14 / 수정일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