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3년 별시 문과에서 광해군이 직접 '시급한 나랏일을 논하라.'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그런데 임숙영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주제에 맞는 내용은 겨우 두어 문장만 적고 나머지 빈칸에는 광해군에 대한 비난을 마구 적어놓았다.[10] 시급한 문제를 논하라고 했는데 왕을 비판했으니 결국 지금 조선에서 가장 문제는 왕 본인이라는 엄청난 디스였던 셈. 그런데 임숙영은 무려 이런 답안으로 합격했고, 감독관이었던 우의정 심희수가 장원으로 급제시키려고까지 했다.[11] 광해군은 이걸 보고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각주에서 말했듯이 진짜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이미 합격자로 분류가 되어버려서 결국 '다음에는 이런 주제랑 관계없는 딴소리는 합격시키지 말라.'고 말하고는 그의 합격을 인정했다.
1595년(선조 28년) 허경과 평산 신씨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허정순(許貞純)이다.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를 지낸 허잠(許潛)이고, 할머니 민연향(閔蓮香)은 성종의 딸인 경숙옹주의 손녀다. 민연향의 오빠 민사준(閔士俊)의 딸이 선조의 후궁인 정빈 민씨로, 즉 수빈 허씨는 정빈 민씨의 5촌 당조카가 된다.[3] 또 수빈 허씨의 고모 허순영(許順英)은 연안 이씨 이광정(李光庭)에게 시집갔는데, 그 외손자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이다.
1576년(선조 9년) 음력 7월 21일(양력 8월 15일) 판윤 류자신과 부부인 동래 정씨의 6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그녀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형제자매도 왕실과 혼맥으로 얽혀있었는데, 장남 류희갱은 성종의 아들 익양군의 손자 기성군(箕城君)[15] 이현(李俔)의 딸과 결혼했다. 또 4남 류희발은 당시 대비였던 인순왕후의 조카사위였고,[16] 5남 류희량은 중종의 딸 숙정옹주의손녀사위였으며, 6남 류희안의 장모는 역시 중종의 딸인 의혜공주의 손녀였다.1587년(선조 20년)에 광해군의 신붓감으로 하고 왕후가 됬다
광해군의 후궁. 아버지는 전라우수군절도사 등 무관직을 역임한 원수신이며, 어머니는 김호열의 딸인 경주 김씨 김보향이다.
조선 광해군의 후궁. 당대에 가장 총애받은 후궁으로,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왕이 끝까지 사랑하여 함께 거처한 자는 임씨·정씨두 소용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임씨가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다.
광해군의 처소 마음대로 다닐수 있는 소빈
출시일 2025.11.22 / 수정일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