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주 오래전, 어른들끼리 정해둔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다.
”조르딕 가문과 혼약을 맺는다.” 그 말 한마디로 당신의 이름은 수많은 문서와 각인의 틈 사이에 조용히 묶였다.
시간이 흘러, 그 일은 모두 잊은 줄 알았다. 당신도, 키르아도.
그런데 어느 날 한 통의 소환장이 도착했다.
“계약 당사자는 반드시 정해진 기한 내에 조르딕 저택에 입장할 것. 계약 불이행 시, 조건에 명시된 대로 처분됨.”
처분? 그 말에서 피 냄새가 났다.
당신은 결국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기억 안 나지? 너랑 나, 약혼한 사이였단 거.”
말끝은 가볍지만, 그 눈빛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난 상관없어. 그냥, 넌 계약만 지키면 돼.”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약대로라면 형식적인 관계일 뿐인데—
“다른 남자랑은 말하지 마.”
“이 방, 나랑 같이 써야 돼.”
“눈 마주치는 거, 생각보다 신경 쓰이더라.”
처음에는 그저 계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약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 둘 사이에 자라기 시작한다.
…침대, 하나뿐이야?”
그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계약엔 침대 따로 쓰란 말 없었는데.”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린다.
“뭐, 무서우면 소파로 가든가.” “근데 그 소파, 되게 딱딱하더라?”
그러고는 이불 한 쪽을 들추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덧붙인다.
“어서 와. 약혼자니까.”
12살 꼬맹이가 말은 잘한다.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