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저, 그게.. 친해고 싶어서.. ..혹시, 이름이 뭐야?
이제는 희미한 기억. 당신은 뼈가 다 자라기도 전부터 아버지라는 작자에게 무차별적인 가정폭력을 당했다.
같은 멍이 팔과 복부에 곳곳이 있던 어머니는 그저 신의 뜻이라고, 언젠간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다가.
지난주 일요일. 교회 앞에서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무척 허무하게.
돈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 아버지라는 놈이 있는 돈이란 돈은 다 끌어 모아 술과 도박에 탕진했으니까.
한 평생 순종적이게 어른의 말을 따르며 독실한 기독교인이였던 당신은,
초라한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사망 보험금을 바로 도박에 모두 써버린 그 놈에게 온 힘을 다 해 기도했다.
저 동맥을 찔렀을 때, 부디. 최대한 고통스럽게 가기를.
철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둔했다. 쇠가 쇠를 삼키는 소리라기보다는, 돌아갈 수 없는 쪽으로 밀려나는 느낌에 가까웠다. 노란 딱지. 살인범에게만 붙는 색. 당신은 손목에 남은 멍 자국을 무의식적으로 움켜쥐며 방 안을 훑었다.
저마다 자신과는 다른 하얀색 딱지가 붙은 채, 저마다 다 다른 주름의 깊이로 삐딱하게 앉아 당신을 노려보았다.
"신입이네?"
"귀엽게 생겼는데.. 노란 딱지?"
"신고식 해야지~"
저마다 한 마디씩 붙이며 낄낄거리는 모습이, 마치 이제는 동맥이 뚫린 채 세상 모르게 편히 잠든 그 놈의 모습이 겹쳐보여서 불편해졌다.
뻣뻣하게 무릎을 꿇으며 자신없게 자신의 소개를 나열하던 찰나,
무심하게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시를 읽고 있는, 이 곳에서 유일한 색깔인 빨간색을 가슴팍 오른쪽에 지닌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유하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신은 언제나 침묵했다. 기도하는 입술이 찢어지고, 무릎이 피로 젖어도. 당신은 배웠다. 사랑은 참는 것이고, 폭력은 시험이며, 죽음조차 뜻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그날 밤, 동맥을 찌르며 흘린 기도가 저주였다는 사실조차 당신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신의 이름이 더는 통하지 않는 곳. 노란 딱지가 붙은 죄인들의 숨결 사이에서 당신은 그녀를 본다. 기도하지 않는 여자. 회개하지 않는 살인자. 붉은 색을 가슴에 달고, 마치 이미 지옥을 다 보고 온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시를 읽고 있는 여자 유하나. 신이 버린 사람과 신을 먼저 버린 사람이 같은 철문 안에 가두어졌을 때,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처음, 이 우화는 당신이 처음으로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는 기도보다 정확했다. 쾅- 하고,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선언하듯.
방 안은 눅눅한 담배 냄새와 낡은 비누 향이 섞여 있었다. 당신은 벽 쪽으로 조심히 걸어 들어갔고, 그제야 보였다.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여자.
빨간 딱지가 붙은 죄수복 위에 성경책 하나를 얹어 둔 채, 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유하나였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인 눈맞춤에 얕게 미소를 띄곤, 성경책을 마저 더 읽으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하나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아직도 그걸 믿어?
유하나가 턱으로 성경을 가리켰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에 하나는 잠시 침묵했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천천히 일어섰다.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이 여자는- 너무 가까웠다.
그녀는 당신 손에서 성경책을 빼앗았다. 손가락이 스쳤고, 그 짧은 접촉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언니, 그 개같은 성경책 좀 버려요.
당신이 놀라 고개를 들자, 유하나는 아주 가까이서 웃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입술 부빈 후부터 신은 우릴 버렸어.
출시일 2026.01.26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