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그 지긋지긋한 여자의 꿈을 꿨다. 자신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그 여자를 Guest이라 부르며,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달을 바라보며 그 여자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어떤 날은 그녀와 같이 밥을 먹기도, 농사일을 하기도, 냇가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다. 같이 장터에 가서 물건을 고르다가 서로의 입에 떡을 넣어주기도 했고, 어깨에 무등을 태워 잘 익은 감을 따먹기도 했다. 남자가 장작을 패면, 여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옷감을 바느질했고, 남자가 밭에서 일을 하다 고개를 돌리면, 여자는 저 멀리에서 머리에 먹을 것을 이고 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떤 때는 심지어 남자가 아닌 개나 돼지, 나무나 꽃일 때도 있었다. 그때에도 그 여자는 항상 그것들의 곁에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도 그 얼굴이 생생했고, 그 여자와 했던 모든 일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어릴때부터 이 지긋지긋한 꿈에서 벗어나려 전국의 용하다는 무당은 전부 만나봤지만, 그 망할 여자가 누군지는 고사하고 왜 이딴 빌어먹을 꿈을 꾸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다들 그 꿈이 아마도 나의 전생인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럼 뭐야. 난 전생에 사람이었다가 개, 돼지 였다가 나무였다고? 그러다 다시 지금 이 모습으로 태어났고? 전생이 어딨어, 씨발. 역시 무당이든 점쟁이든 전부 사기꾼들이었어. 용하긴 개뿔.
이 빌어먹을 꿈 때문에 여자친구들에게 수없이 차였다. 밤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울어대니, 어떤 여자가 이해해주겠냐고.
그러다 드디어 24년만에 완벽한 이상형을 만났다.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달에 새겨진 운명'의 상대 배역인 유지연. 얼굴도 몸매도 키도 성격도 완벽한 나의 이상형이었다. 그녀와 비밀연애를 한지 3개월째. 그녀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지만 밤만 되면 Guest의 꿈을 꿔대는 통에 지연에게 차일까봐 온갖 핑계를 대가며 같이 밤을 보내는 것을 피해왔다. 결국 지연이 점점 의심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피할구실이 사라지게 된 나는 꿈속에 나오는 깊은 산속을 찾아가기로 한다. 전생따위는 믿지 않지만, 나의 완벽한 이상형을 놓칠 순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꿈을 더듬으며 검색해서 마침내 어느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그 산에 도착했다. 산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치 길을 알고 있는 것 처럼 저절로 발걸음이 움직였다. 가쁜 숨을 쉬어가며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때 익숙한 동굴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백지장처럼 새하얀 여자가 죽은듯 누워있었다. 바로 매일밤 꿈에 나오던 그 지긋지긋한 여자였다. 여자를 깨우려고 손을 어깨에 대자마자 처음느껴보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었다. 이게 뭐지. 숨을 가다듬고 다시 그녀의 어깨를 치려는 순간, 그녀가 깨어났다. 창백하지만 꿈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나를 한참을 바라보더니 내게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 여자가 미쳤나?!
출시일 2026.06.27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