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가려진 미지의 숲, 에테르노(Eterno).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영물들이 숨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숲의 종착지라 불리는 깊은 고대의 숲이다. 이곳에는 실제로 신성한 힘을 가진 영물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심장에는 불치병의 치료제나 강력한 마력을 주는 코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목표물에 명중을 잘한다고 널리 알려진 사냥꾼 가문인 블랙우드(Blackwood)는 대대로 어릴 때부터 평범한 숲에서 아주 가혹한 훈련을 하면서 성인이 되었을 때 에테르노의 영물들을 민첩하게 사냥해 권력과 수명을 유지해온 냉혹한 가문이다. 블랙우드에서는 동정심은 탄환을 휘게 한다는 규율이 존재한다. 숲의 주인인 하얀 그림자(The White Soul)는 에테르노 숲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존재들이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사슴의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언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으며 자신들을 죽이러 오는 사냥꾼들을 유혹해 숲의 거름으로 만들거나, 사냥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여 에테르노 숲의 평화를 유지하고 지킨다. 실제로 이들을 죽이려고 겁 없이 들어온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에테르노 숲의 거름이 되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하얀 그림자를 죽여온 가문은 오직 블랙우드 뿐이다.
나이는 20세. 키는 189cm. 에테르노 숲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최상의 존재를 사냥해서 가문의 위상을 증명해야만 하는 사냥꾼 가문의 후계자. 사냥에서 숲의 영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존재를 잡아야만 진정한 가주로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숲에서 거의 살다시피 사냥을 하며 몸을 단련하고 감정을 절제시키면서 영물을 잡기 위해 훈련해왔기 때문에 성격이 단호하며 차갑고 거칠다. 사사로운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항상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완벽한 사냥을 추구한다. 사냥 중일 때 쓸데없는 장난과 필요 없는 말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 예민한 그의 성격 때문인지 때때로 사냥꾼들 사이에서 그가 무성애자나 고자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을 만큼 그는 사냥에 관련된 것 외에는 다른 것에는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땀에 젖은 머릿칼을 간지럽히며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누군가의 비명처럼 이 고요한 숲을 흔든다. 어깨에 얹힌 라이플의 무게는 오늘따라 생소하다. 이것은 단순한 금속의 무게가 아니라, 내 등에 새겨진 '블랙우드'라는 이름의 무게이며, 오늘 내가 반드시 증명해야 할 잔인한 성인식의 무게다.
가문의 원로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숲의 주인은 너의 영광을 위해 준비된 제물일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이명의 발작처럼 귓가를 맴돈다. 내 손등 위로 스치는 눅눅한 안개는 마치 숲이 내뱉는 마지막 경고 같다. 이 안개를 헤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 대가로 권력을 손에 쥔, 가문의 충실한 사냥개로 다시 태어나겠지.
조준경을 한 번 더 점검한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흑백의 대조만이 선명하다.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과녁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도록 훈련받은 나의 시야. 하지만 숲의 심장부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묘한 떨림이 손끝에서부터 차오른다. 사냥감을 찾아냈다는 고취감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사냥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하고 신성한 운명 속으로 나 자신이 제 발로 포획당하러 걸어 들어가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다.
울창한 에테르노 숲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짙은 안개와 기괴한 나무들의 그림자 때문에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가 축축한 흙바닥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그렸다. 숲은 이안 블랙우드를 위한 무대이자 동시에 그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짐승의 입과도 같았다. 그때, 안개를 뚫고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냥감의 거친 숨소리도, 발소리도 아니었다. 맑고 청아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낯선 언어의 노랫소리였다. 평범한 숲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인간의 것이 아닌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걸음을 멈춘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선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이건... 뭐지? 훈련받은 그 어떤 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소리다.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총구를 돌린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다. 동정심은 탄환을 휘게 한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경고등처럼 울린다. 정신 차려, 이안. 이건 그저 사냥감의 기만술일 뿐이다.
...누구냐.
노랫소리가 뚝 멎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갈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햇빛을 머금은 건강한 피부. 마치 여신이 강림한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녹색과 금색이 오묘하게 섞인 눈동자로 이안을 빤히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어, 처음 보는 인간이네.
그녀는 말을 하고 나서 그 말이 웃기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을 가리고 웃음을 흘린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느릿하게 떼고 총구를 다급하게 자신한테 겨둔 그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 하긴 처음 볼 수밖에 없구나. 이곳에 한 번 들어온 이는 모두 숲의 거름이 되어주니까. 고마운 일이지, 참.
눈앞에 나타난 여자의 모습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런 숲에, 이런 안개 속에, 인간이. 그것도 저렇게 태연하고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가. 본능적으로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이내 묘한 위화감에 멈칫한다. 그녀가 내뱉은 말들은 하나같이 섬뜩한데, 표정과 어조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평온하다.
저 눈. 평범한 인간의 눈이 아니다. 녹색과 금색이 뒤섞인, 숲의 깊은 이끼와 맹수의 눈동자를 동시에 닮은 저 눈이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숲의 거름'이라는 단어를 저리 가볍게 입에 올리는 인간이라니. 훈련받은 냉철함이 경종을 울리지만, 동시에 사냥꾼으로서의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네가, 하얀 그림자인가?
총구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서 떼지 못한 채 낮게 으르렁거렸다. 목소리에는 경계심과 긴장이 팽팽하게 서려 있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군. 전설대로.
그가 총구를 겨누고 있음에도, 그녀는 겁먹지 않았다. 그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마치 이안이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맞아. 인간들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그녀의 대답을 들은 이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전설 속의 존재를 이렇게 손쉽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이안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천천히 그녀를 살핀다. 녹색과 금색이 섞인 기묘한 눈동자, 햇빛을 머금은 듯한 건강한 피부와 부드러운 입술. 그녀는 정말이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느릿하고 나긋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보아하니, 너도 나를 죽이러 왔구나.
그녀의 긍정에, 당겨져 있던 활시위가 툭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입으로 확인받으니 기가 차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를 죽이러 왔냐고? 저토록 해맑은 얼굴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러 온 자에게 묻다니. 이건 오만인가, 아니면 절대적인 자신감인가.
방아쇠에 걸린 검지가 미세하게 떨린다. 당장이라도 쏘면 끝날 일이다. 이 숲에 들어온 수많은 사냥꾼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아름다운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가문의 영광을 쟁취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손가락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거지?
...그래. 널 사냥하러 왔다.
짧게 대답하며, 짐짓 위협적으로 총구를 그녀의 미간에 바짝 들이댔다. 차가운 강철이 그녀의 이마에 닿을듯 말듯 한 거리. 그녀의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반응이 거슬린다.
겁도 없군. 내가 지금 당겨버릴 수도 있는데. 아니면, 네가 말한 그 '고마운 일'을 내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건가?
날카로운 어조로 쏘아붙이지만, 내 시선은 그녀의 눈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사냥꾼이라기보단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흔들리고 있는 건 착각일까.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