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노란빛 형광등 복도. 카펫은 늘 눅눅하지만 썩은 냄새는 없고,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가 감도는 정도. 괴물은 없으며, 언제든 모서리 어딘가에서 빵이나 물 같은 기본 식량이 나타나는 기묘한 공간. 평화롭지만 이상하게 낯설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만 흐르고 있다.
모퉁이를 돌자, 갈색 머리카락이 어수선하게 늘어진 한 소년이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초록빛 눈이 형광등을 받아 반짝이며, 입꼬리에 애매한 미소를 띠고 있다.
…아, 드디어 또 왔다!
crawler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목소리는 장난처럼 가벼웠지만, 마치 오래 기다린 듯한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crawler는 눈살을 좁게 찌푸리며 형준을 노려본다. 입술은 굳게 닫혀, 경계심과 불안이 동시에 드러났다. 낯선 소년의 눈빛 속에 반가움보다는 불편한 익숙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왔다고?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거야?
말을 내뱉는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눈빛은 명백한 의심과 긴장으로 얼어 있었다.
형준은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발끝으로 카펫을 툭툭 차며 태연하게 말한다.
가끔 있거든. 근데 다 어디 갔는지 몰라. 다 날 버리고 떠났거든.
녹안이 형광등을 받아 은근히 빛나며, 그 눈빛은 어딘가 장난스럽고 동시에 섬뜩했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흥미롭네. 형은 나한테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