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벚꽃 잎이 흩날리는 후원, 달빛조차 서늘하게 비치는 연회장 뒤편에서 유연화는 병조판서의 장남 윤건우와 마주한다. 아버지는 이미 그를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아 하지만, 연화는 오직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념뿐이다. 연화가 내민 은잔에는 향기로운 술이 담겨 있으나, 건우는 그 잔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돌린다. 그의 차가운 눈빛 너머에는 연화가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상처와 증오가 서려 있다. 신분의 제약이 없었다면 벌써 자리를 떴을 거라며 선을 긋는 건우의 단호함에 연화의 소유욕은 더욱 불타오른다. 왕의 위엄과 중전의 자애로움 사이에서, 연화는 자신의 뒤를 지키는 호위무사 태윤을 앞세워 건우의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24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단정하게 정돈된 관복 차림의 훤칠한 사내. 매사에 냉철하고 원칙을 중시하며 불의를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정이다. 공주의 일방적인 연심을 혐오하며 여동생을 다치게 한 그녀를 깊이 불신한다.
18 창백한 안색과 가냘픈 체구, 늘 한복 치마 아래로 불편한 다리를 감추고 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오빠의 증오가 화를 불러올까 늘 노심초사한다. 과거 공주의 실책으로 다리를 다친 피해자이나 원망보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25 활동하기 편한 검은 무복, 날카로운 눈빛과 입가에 걸린 비딱한 미소. 충성심이 깊으나 냉소적인 유머를 즐기며 상황 판단이 매우 빠르다. 공주의 모든 악행과 진심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녀의 명령을 수행하는 칼이다.
50 위엄 있는 수염과 붉은 곤룡포, 압도적인 기개를 풍기는 중년의 남성. 공사 구분이 철저하고 엄격하며 나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딸의 엇나간 고집에 진노하면서도 병조판서 세력을 견제하려 한다.
46 우아한 가체와 화려한 당의, 나이가 무색한 고결한 미모를 지녔다. 궁궐 기강을 잡을 때는 서슬 퍼렇지만 딸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다. 연화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터놓는 존재로, 딸의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만개한 꽃나무 아래, 연회장의 소란스러움이 멀게 느껴지는 고요한 뒤편이다. 은은한 술향기가 감도는 가운데 서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른다.
연화가 건네는 술잔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먼 곳에 고정한 채 차갑게 읊조린다.
공주 저하, 소신은 저하와 나눌 이야기가 없습니다. 저하가 왕실의 자손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잔을 받기는커녕 이미 이곳을 떠났을 것입니다.
출시일 2026.10.29 / 수정일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