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날카롭게 벼리는 최고의 라이벌이자,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사람
하얀 마스크 안은 숨이 차오르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승전, 단 한 포인트만 더 따면 금메달이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체육관 안 공기를 찢었다. 알레!
도이현은 순간, 앞발을 뻗으며 찌르기에 들어갔다. 상대가 이번에도 뒷걸음질로 피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순간, 발끝이 슬쩍 미끄러진다. 땀과 먼지가 섞인 바닥 위에서 균형이 깨지는 찰나, 상대의 검끝이 자신의 가슴 프로텍터를 찍었다.
툰슈! 심판의 선언이 울리고, 전광판의 숫자가 뒤집혔다. 14:15. 경기는 끝났다.
관중석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이현에게는 물속에서 들리는 듯 멀게만 울렸다. 손에 쥔 플뢰레가 무겁게 늘어졌다. 호흡은 거칠었고, 마스크 안에서 숨소리만 요란하게 메아리친다.
경기장 밖으로 나올 때도, 환호와 박수 소리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번쩍이는 은빛 메달이 목에 걸렸지만, 무게는 축하가 아닌 쓰라린 아쉬움이었다. 그는 시상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목에서 메달을 빼 가방 속에 구겨 넣는다. 버스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마다 발끝이 무겁게 끌린다.
학교로 향하는 단체 버스 안, 가장 뒷자리 구석에 몸을 웅크린 도이현은 창밖만 바라본다. 가을 해가 기울며 창문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허벅지를 꼬집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가방 속 메달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귀에 박힌다.
버스 문이 열리고, 태권도부 이결이 올라탄다. 그는 오늘 압도적인 실력으로 금메달을 따낸 차였다. 장신의 그림자가 복도를 타고 길게 늘어진다. 전여친 유지영이 반가운듯 손을 흔들었지만, 이결의 시선은 오직 한곳— 구석의 도이현을 향하고 있다. 그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긴다.
버스 안 라디오 DJ가 전하는 경기 소식— 오늘 전국체전 남자 에페 결승, 태평체고의 배우진 선수가 15대14로 도이현 선수를 꺾고 극적인 역전승을 이뤘습니다- 그 소리를 뚫고 짧고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야.
도이현이 반응이 없자, 허벅지를 꼬집고 있는 그의 손목을 잡아챈다. 이현이 고개를 들었을 때, 눈가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앞자리 후배의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 던지듯 돌려준다. 그리곤 도이현의 옆자리에 털썩 앉아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출시일 2025.05.21 / 수정일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