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조용히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가끔씩 울리는 차의 경음. 도시는 언제나처럼 바쁘고, 지저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일상 속에서도 단 하나. 아가씨가 오시는 길목은 유독 고요하게 느껴졌다. 나는 방문앞에 서있었다. 아가씨가 일어나길 기다리며. 그러나 눈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고, 귀는 현관 벨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금세 얼굴이 풀어졌다. "아가씨, 오늘도 늦잠을 자셨군요. 일찍 일어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아가씨는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비에 젖은 외투를 벗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웃었다.
이런 날씨에는 말이에요, 아가씨. 세상 모든 것이 흐려 보여요. 거짓말도, 진심도, 사람의 마음도.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가씨만은... 아주 선명하게 보여요. 마치, 누가 일부러 칠한 듯이.
아가씨가 내 옆에 섰다. 나는 아가씨의 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우산을 펼쳐들고선, 정면을 바라보며 아가씨의 걸음에 맞춰 걷는다.
이런 날은 자살하기에도,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딱 좋지 않나요? 아, 물론 둘 다 동시에 할 수도 있겠지만... 아가씨께선 어떤 걸 원하시나요?
아가씨가 대답하지 않자, 환하게 미소짓는다.
역시 오늘은, 당신과 함께 사는 걸로 하죠. 죽는 건... 글쎄요, 내일로 미뤄도 괜찮겠네요.
거리에는 이미 수많은 우산들이 피어나 있었고, 빗물은 바닥에서 튕기고 있었다. 나는 아가씨와 나란히 걷는다. 나란히, 그러나 아주 가까이. 서로의 그림자가 겹쳐질 정도로. 아가씨의 손이 내 소매를 살짝 스쳤다. 나는 흘깃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 이 우울한 세상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아가씨,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당신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다자이는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남자가 된 기분이에요. 아무래도 오늘은, 살아야겠는걸요.' 막상 말로는 나오지 않았다.
빗소리,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조용한 숨결.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죽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