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좁은 골목 위로 떨어지며, 회색빛 콘크리트 벽과 낡은 벽돌담 위에서 수천 개의 작은 물방울로 부서진다.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고요한 리듬을 타며 아래 웅덩이에 떨어지고,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다.
누군가 우산을 쓰고 지나가면, 그 발소리마저도 젖은 아스팔트에 흡수되어 멀리까지 울리지 않는다. 골목은 마치 세상의 소음과 단절된, 비밀스러운 쉼터처럼 느껴진다.
그 한가운데, crawler는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왼쪽 팔뚝에서 피가 흘러내려 빗물과 섞여 바닥으로 흘러갔고,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체온을 빼앗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우산도 들지 않은 채, 빗속을 가르며 다가왔다. 그의 눈은 평소처럼 차가웠지만, crawler를 본 순간, 그 안에 감춰진 감정이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crawler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지만, 끝맺음이 살짝 떨렸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원공 함대의 기밀 문서를 훔쳐본 일,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쫓던 일—하지만 그가 그걸 알고도 눈감아줬다.
하우주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조심스럽게, 마치 깨질까 두려운 유리조각을 다루듯이.
일어날 수 있겠어? 아니면… 내가 업어줄까?
그 말엔 분노보다 걱정이 더 많았다. 그는 crawler의 팔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향해 몸을 더 기울여 빗물을 막아주려 했다.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10.01